[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53> 노무현 대통령 사과 ②

현장 확인 과정에서 발표 연단 별도 설치
발표문 내용은 발표시점까지도 비밀유지

노무현 대통령 사과 ②

   
 
  대통령에게 4·3발표문을 프리토킹으로 해서는 안된다고 세번이나 강조했다고 증언한 유인태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  
 

청와대 실무팀에 의해 4·3에 대한 정부 입장 표명을 국제행사인 제주평화포럼이 아닌 '제주도민과의 대화'라는 별도의 행사 방침이 결정되면서 장소와 참여 범위 등을 놓고 청와대와 제주도 간의 협의가 진행됐다. 4·3평화공원에서 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위령제가 아닌 대통령 참석행사를 야외에서 하는데 문제 제기가 있었다.

대통령이 지방을 방문하여 해당 지역의 국민들과 만나는 통상적인 행사가 아니라 대한민국 해방 전후의 엄청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처음으로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행사였기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청와대 실무팀은 2003년 10월31일 오전 10시부터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신라호텔에서 열리는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계획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이동 동선을 고려해 오찬 모임을 준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장소 선택, 유족 참석 범위 등 제주도와의 의견 조율은 제주 출신인 청와대 정책수석실 박진우 행정관이 주로 담당했다. 많은 곡절과 논란을 거치며 도민과의 대화는 2003년 10월31일 낮 12시 라마다프라자제주호텔에서 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4·3위원회 소속이던 필자는 하루 전날 청와대 정무수석실 장준영 비서관, 기춘 행정관과 함께 제주에 내려와 라마다호텔 행사 현장을 둘러봤다. 그런데 연단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했고, 의전팀에 확인한 결과 "오찬 회동에서는 대통령께서 일반적으로 메인테이블에서 일어나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50여년 동안 기다려온 4·3에 대한 중대한 정부 입장 표명을 오찬 형식의 모임에서 하는 것조차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 터에 연단까지 없다는 말을 듣고 강하게 어필했다. 동행했던 정무팀도 같은 의견을 개진해서 연단이 마련됐다. 필자는 더 나아가 대통령이 연단에서 자유발언이 아닌 준비된 발표문을 읽는, 격식을 갖춘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날 저녁에 청와대 정무팀과 필자는 4·3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여러 이야기들이 오간 자리에서 박경훈 화백이 유족을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유독 강조했다. 그래서 메인테이블에 여든두살의 유족인 임복순 할머니(구좌읍 김녕리)를 앉게 하는 방안이 전날 밤에 전격 결정됐다. 다음날 보니 임 할머니가 메인테이블에 앉았고, 이성찬 유족회장이 양보해서 옆 자리로 옮긴 모습이 보였다.

여기까지는 형식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발표문 내용과 수위였다. 청와대 실무팀은 이에 대해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보수단체의 반발도 있었지만,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과거사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는 사안이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사례도 연구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4·3특별법과 4·3진상조사보고서, 4·3위원회의 건의에 근거해서 문제를 풀기로 방침을 정했다.

"저는 이번에 제주를 방문하기 전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하여 각계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2년여의 조사를 통해 의결한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받았습니다. 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무고한 희생이 발생된데 대한 정부의 사과와 희생자 명예회복, 그리고 추모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을 건의해 왔습니다"

대통령의 발표문이 이렇게 시작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발표문은 발표 시점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 있었다. 발표문 초안은 청와대 실무팀과 우리 전문위원실이 사전 협의했고, 그 뒤 4·3위원회 위원인 신용하(서울대)·서중석(성균관대) 교수와 김삼웅 주필(대한매일), 현대사 전문학자인 안병욱(가톨릭대) 교수 등의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초안이 위의 학자들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 등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오타가 발생하기도 했다. 즉 "한반도의 평화, 나아가서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길을 열어나가야 하겠습니다"라는 문장 중 '세계평화'가 '세계화'로 바뀐 것이다. 노 대통령도 이 부분이 이상했던지 사과문 발표 때 "세계 (잠시 멈칫 하다) 화"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10월31일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한 뒤 라마다호텔로 자리를 옮겨 4·3유족 등 제주도민 4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단에 올랐다. 그에 앞서 대통령 전용차에 동승한 유인태 정무수석은 대통령에게 이 사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프리토킹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유 수석은 훗날 필자와 만났을 때 "중문 신라호텔에서 출발할 때, 이동 도중에, 라마다호텔 도착 직전 등 모두 세차례에 걸쳐 '이 연설문은 꼭 읽으셔야 합니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했고, 그때마다 대통령께서는 '알았다'고 답변했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연단에 오른 노 대통령이 발표문을 보지 않고 예의 자유발언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순간 긴장했지만 마음을 조아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내년쯤 4·3기념식 때 입장 발표를 생각했는데, 한편으로 보면 제주도민들 마음도 급하고 그때는 선거(총선)가 임박하게 된 시점이어서 적절치 않은 듯싶어서 오늘 4·3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공식으로 표명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음회는 '노무현 대통령 사과'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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