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55> 노무현 대통령 사과 ③

  참석자들 "고맙습니다" 연신 감격의 눈물
  중앙지 "과거사에 대한 첫 사과" 심층보도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이 4·3사건 희생에 대해 정부차원에서 공식 사과한 뒤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50여년의 한을 풀게 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사과 ③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3년 10월31일 라마다프라자제주호텔에서 열린 '제주도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한 분명한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대통령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까 궁금해 하던 4·3유족 등 참석자 400여명은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이곳저곳에서 "고맙습니다"란 환호가 터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필자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고 밝혔다. 또 열렬한 박수가 나왔다. "정부는 4·3평화공원 조성, 신속한 명예회복 등 위원회의 건의사항이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박수가 터졌다.

노 대통령은 "이제 우리는 4·3사건의 소중한 교훈을 더욱 승화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시켜야 하겠다"면서 "이제 제주도는 인권의 상징이자 평화의 섬으로 우뚝 설 것"임을 선언했다. 제주도가 세계적인 '평화의 섬'이 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박수는 10여차례 이어졌다.

박수가 계속되자 노 대통령은 "사실 4·3특별법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김대중 대통령이 마음먹고 만든 법이다. 그래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 제가 오늘 받은 박수는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받는 박수로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노 대통령의 용단에 의해 발표된 이 한마디의 사과가 반세기동안 유족과 제주도민들을 짓눌러 왔던 이념적 누명과 불명예를 한꺼번에 씻어내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20여년 동안 4·3진실찾기를 해왔던 필자에게도 그날은 가장 기쁘고,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물론 4·3특별법이 기적적으로 통과하던 날, 4·3진상조사보고서가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어렵게 통과한 순간도 잊지 못할 감동이었지만 그 가운데도 으뜸은 단연 대통령이 사과하던 그 순간이다.

대통령의 발표 직후 이성찬 4·3유족회장은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대통령께서 진심으로 사과해 주신데 대해 매우 감사하다"면서 다시금 박수를 유도했다. 그는 이어 "55년 한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고,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아버님 영전에 보고드리겠다"고 밝혀 장내를 숙연케 했다.

과거사에 대한 대통령의 첫 사과는 제주언론뿐만 아니라 중앙언론의 빅뉴스가 됐다. 중앙지들은 사과 내용만이 아니라 대부분 '대통령 사과의 의미'란 해설기사를 실어서 심층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정부수반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 발언은 우리로선 사상 처음인데다, 세계사에서도 드문 역사의 한페이지에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과거 정부의 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양민희생을 현 정부의 최고 책임자가 인정하고, 잘못된 역사에 대해 반성을 표했다는데 의미가 있고, 정부의 연속성이라는 차원에서는 55년간 제주도민들에게 씌워진 멍에를 벗기고 불행한 사건에 역사적인 매듭을 지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동아일보」는 "그동안 '좌익세력의 반란 진압을 위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는 기존의 사건 성격 규정을 정부차원에서 재해석했다는데 의미가 있는데, 반세기 동안 가려있던 무고한 양민의 희생을 공식 인정한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보수단체의 반발을 예로 들며 "그러나 이 사건의 성격 규정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토를 달았다. 「한겨레신문」은 '55년만에 정부 사과 받은 제주4·3사건'이란 제하의 사설을 통해 "군사정권이 끝나고 정부와 민간, 제주도민들의 노력으로 역사적 진실과 실체를 밝히려는 노력이 열매를 맺었다"면서 "또한 반성하는 역사를 쓸 수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했던 외신 기자들도 제주4·3과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CNN 서울특파원 손지애 기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3이라는 역사적 배경 때문이라도 제주는 '평화의 섬'을 추진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단체들은 이와는 다른 입장이었다. 대통령의 사과에 심한 불만을 드러냈다. 급기야는 헌법재판소에 4·3진상조사보고서와 이에 따른 대통령 사과를 취소해야 한다는 요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다음회는 '4·3보고서 도민보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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