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71> '세계평화의 섬' 선포

   
 
  2005년 1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서명식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태환 도지사 등 참석자들이 돌하르방을 보면서 웃고 있다.  
 

잇단 정상회의 개최 힘입어 추진 가속도
각종 평화실천사업 등 정권 바뀐후 후퇴

'세계평화의 섬' 선포
1991년 4월 제주국제공항 주변 도로에는 색다른 깃발이 휘날렸다. 붉은 바탕에 낫과 망치가 그려진 깃발, '철의 장막'의 상징인 소련 국기였다. 그 '적국'의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역사상 처음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를 방문한 것이었다.

해방 직후 국제적인 냉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혹독한 희생을 치렀던 제주도민들은 이 역사의 변화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계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 대통령이 냉전의 대표적 희생지인 제주도를 방문했기 때문이다. 그 어느 지역보다 레드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제주도민들에게 '평화의 섬'이란 낯선 어휘가 다가서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그러면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하자고 처음 거론된 것은 언제인가. 고르바초프가 제주를 방문하기 전날인 1991년 4월18일자 「제민일보」에 실린 미 캔터키대학교 문정인 교수의 특별 기고에서였다. 제주출신으로 국제정치 분야에 정통한 그는 이 역사적 회담을 계기로 제주는 어떻게 국제적 위상을 정립해 가야할 것인가에 물음을 던지고, 그 해답으로 '평화의 섬' 선포를 제시했던 것이다.

그 이후 중국 장쩌민, 미국 빌 클린턴, 일본 하시모토 류타로·고이즈미 준이치로 등 한반도 주변 열강 정상들의 제주 방문이 이어지고, 북한 동포에게 감귤보내기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평화의 섬' 논의는 가속도가 붙게 됐다. 2001년부터 창설된 제주 평화포럼도 일조를 했다. 

여기에 제주도민들을 옥죄었던 4·3문제가 특별법 제정에 이어 2003년 정부 차원의 진상보고서 확정, 그리고 국가원수의 사과로 이어져 해결 기미가 보이면서 '평화의 섬' 논의는 더욱 구체화됐다. 제주도는 2004년에 각계 인사 22명으로 '제주평화의 섬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서 평화의 섬 지정 운동을 본격적으로 밀고 갔는데, 필자도 추진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제주도는 2005년 1월27일 정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받게 됐다. 이날 발표된 평화의 섬 선언문의 전문(前文)은 "삼무(三無)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고 되어 있다. 결국 평화의 섬 지정 배경과 목표는 ① 삼무정신의 계승 ② 4·3비극의 화해·상생 승화 ③ 정상외교를 통한 세계평화 기여로 압축될 수 있다.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서명식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측 인사와 김태환 도지사 등 제주도민 대표 12명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날 노 대통령이 축하 인사말을 하면서 '특별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노 대통령은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것은 "제주도민들이 간절하게 염원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만한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삼무의 섬'이라고 해서 평화를 가꿔온 역사를 가지고 있고, '4·3항쟁'이라고 하는 역사적인 큰 아픔을 딛고 과거사 정리의 보편적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진실과 화해의 과정을 거쳐 극복해나가는 모범을 실현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이다.

현직 대통령이 뜻밖에도 '4·3항쟁'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이 표현은 4·3의 성격을 둘러싸고 진보와 보수 쪽에서 예민하게 대립하던 용어이기도 했다. 필자는 그 직후 청와대 비서진에게 원고에 있는 용어냐고 물어봤다. 그 관계자는 원고에는 '4·3'으로 정리되어 있었다면서, 다만 대통령의 뇌리에는 '4·3항쟁'으로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전 같으면 극우단체에서 문제삼을 만했던 일인데 예상 밖으로 조용히 지나갔다.

제주도는 세계평화의 섬 선포로 축제 분위기였다. 거리마다 축하 현수막이 나부끼고, 이를 기념해서 공짜 술을 제공하는 음식점도 있었다. 정부는 제주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육성하고 국제평화센터·동북아평화연구소 설립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각 분야별 평화 실천사업 로드맵도 마련됐다.

필자는 「한겨레신문」 2005년 1월31일자에 '제주4·3과 평화의 섬'이란 제목의 특별 기고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전달했다. 또한 "4·3의 진실규명 운동이 내세운 슬로건도 진실을 규명하되 보복이나 새로운 갈등이 아닌, 용서와 화해였고 비극의 역사를 딛고 평화와 인권을 지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제주도는 이제 '평화'란 브랜드를 안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다"고 들뜬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이런 기대치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전인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4·3위원회 폐지 등을 검토하다 도민사회의 반발을 샀다. 평화 실천사업 등이 당초 기대치보다 크게 후퇴한 것은 지금 생각해 봐도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회는 '4·3특별법 개정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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