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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에 4·3추모일 등 추가[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72> 4·3특별법 개정작업 ①
양조훈
입력 2012-10-25 (목) 19:27:21 | 승인 2012-10-25 (목) 19:27:21 | 최종수정 2012-10-25 (목) 19:29:23

   
 
  2004년 11월19일 제주시 건설회관에서 열린 제1차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도민 대토론회'. 4·3유족회 등 4·3관련 4개 단체 주최로 개최됐다.  
 

보수단체·일부 부처 반대로 개정작업 난항
강창일 의원, 청와대·국회 오가며 고군분투


4·3특별법 개정작업 ①
2004년부터 본격 추진된 제주4·3특별법 개정작업 또한 녹록하지 않았다. 그해 6월 개정안 초안이 만들어졌지만, 이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2006년 12월말이었으니 꼬박 2년 6개월이 걸린 지난한 여정이었다.

1999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4·3특별법은 애초부터 4·3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국회 입법 논의과정에서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 통과에 비중을 두다보니 쟁점이 되는 조문들이 삭제되는 등 많이 걸러져 버렸다. 그래도 덮여진 역사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내용이 미비하더라도 특별법 제정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2003년 진상조사보고서가 발표되고 대통령의 사과 표명이란 큰 고비를 넘기자 특별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미비점을 보완하는 법률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제기됐다. 이 작업에 선봉장을 맡은 이가 바로 강창일 국회의원이었다.

제주4·3연구소 소장으로 4·3특별법 제정 운동에 앞장섰던 그가 2004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국회에 진출하자마자 곧바로 4·3특별법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 그해 6월 개정안 초안을 만들고 여론 수렴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희생자와 유족 범위의 확대, 추가 진상조사와 조사권한 강화, 4·3희생자 추모일 제정, 집단 학살지와 암매장지에 대한 유해 발굴, 생활이 어려운 유족에 생활지원금 지급과 특례 혜택 부여, 수형자 전과기록 삭제, 재심의 규정 신설 등이었다. 또한 특별법 입법과정에서 삭제됐던 평화재단의 설립 지원 규정과 4·3사건에 대한 정의를 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 수준으로 수정하는 방안들이 제기됐다.

이런 개정안 내용을 토대로 2004년 11월19일 제주시 건설회관에서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도민 대토론회'(발표자 강창일)가 열렸다. 이 행사는 4·3유족회, 4·3연구소, 4·3도민연대, 제주민예총 등 4·3관련 4개 단체 주최로 개최됐다. 또한 그해 12월15일 국회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한 국회의원모임 주최로 '과거청산과 제주4·3특별법 개정 공청회'(발표자 장완익)가 열렸다.

2005년에도 '4·3특별법 개정 토론회'가 3차례 열렸다. 6월29일 4·3도민연대주최의 토론회(발표자 양동윤)가 제주KAL호텔에서, 7월29일 4·3유족회 주최의 토론회(발표자 문성윤·홍성수)가 제주시민속타운에서, 8월3일 재경4·3유족회 주최의 토론회(발표자 허상수)가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강당에서 각각 개최돼 4·3특별법 개정의 필요성과 개정 내용 등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열린우리당 소속 강창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의원 61명의 서명을 받아 2005년 10월 국회에 제출됐다. 이어 11월에는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이 별도로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의원 10명이 서명한 현 의원 발의 개정안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규정, 수형자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 실시, 진상조사의 연장, 희생자 유족 신고처의 상설화 등 그 수위가 한층 높은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자칭 '제주4·3사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대책위원회'란 보수단체에서 이 4·3특별법 개정 작업에 딴죽을 걸고 나왔다. 이선교 목사가 주도한 이 단체에서는 2005년 10월 "대한민국 자해행위를 저지해야 합니다"란 제목 아래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반대의견을 국회의원들에게 배포했다. 이 반대의견서에는 "이 법안이 17대 국회에서 통과되어 매년 4·3을 국가기념일로 지정된다면 17대 국회는 대한민국 국회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회"라는 살벌한 주장도 담고 있었다.

이런 보수단체의 발목잡기 시도에 대해 제주사회는 공분했다. 그해 11월에 4·3유족회 등 13개 시민사회단체가 나서서 서명받은 1만4766명의 4·3특별법 개정 촉구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제주도와 도의회도 각각 특별법 개정 건의문 등을 보내는가 하면 국회를 방문, 로비를 펼쳤다.

그러나 2005년 정기국회에선 4·3특별법 개정 논의가 별 소득 없이 지나갔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상정됐지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심의 절차도 거치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말았다.

2006년 들어서도 4·3특별법 개정안 심의는 난항을 거듭했다. 2월과 4월 행자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됐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참여정부 시절이었지만 국방부·법무부·기획예산처와 경찰청 등 정부기관에서 일부 조항의 개정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 입장을 보였다. 강창일 의원이 청와대 연석회의, 당정 협의회 등을 통해 이런 장막을 걷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다가 그해 9월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던 강창일 의원이 바로 행자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다. 날개를 단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음회는 '4·3특별법 개정작업' 제2편


양조훈  yjh43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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