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79> 대통령 위령제 참석 불발

   
 
  2008년 4·3위령제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는 한승수 국무총리. 이명박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되었으나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청와대, 참석자 비표도 준비시켰다가 철회
서운한 민심 한나라당 총선 참패로 드러나

대통령 위령제 참석 불발
2008년은 4·3 발발 60주년을 맞는 해였다. 따라서 그해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4·3희생자 위령제 참석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초기 활동 때 4·3위원회의 폐지안을 들고 나오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라서, 민심을 달래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돌았다.

그 스타트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서 끊었다. 4·3유족회는 3월7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명박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공식 청원했다. 김태환 도지사도 3월18일 청와대를 직접 방문해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건의했다. 이어서 여야 정치권, 4·3 관련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대통령의 참석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대통령의 초청에 가장 공을 들인 사람은 누가 뭐래도 제주지역에서 총선에 출마한 한나라당 후보들이었다. 그해 4월9일 벌어질 총선을 코앞에 둔 이들 후보는 이반된 민심을 돌리기 위해서도 대통령의 4·3위령제 참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여러 경로를 통해 그 절박성을 호소했던 것이다.

3월25일로 기억된다. 필자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4·3위원회 사무실에서 퇴근할 시각, 청와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아침 8시까지 청와대로 들어올 수 없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4·3위령제 참석문제를 협의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청와대로 들어갔다. 김두우 정무2비서관, 추부길 홍보기획비서관과 연설문 담당 행정관 등 6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앙일보 논설위원 출신인 김두우 비서관의 설명은 이랬다.

"어제 대통령께 4·3위령제 참석 건을 보고했다. 대통령께서 새정부 들어서 과거사에 대해 처음으로 입장 표명을 하게 되기 때문에 연설문을 보고 참석여부를 결정하자고 말씀했다. 오늘 오후에 그 결과를 보고하기로 되어 있다. 그래서 4·3전문가인 양 수석과 연설문 방향을 협의하고자 부른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난 다음 나는 준비된 초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연설문 담당 행정관은 4·3의 성격을 남로당 폭동으로 보는 견해와 민중항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전제하고, 이제는 이를 극복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게 주요 골자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그런 접근은 오히려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라리 이명박 대통령이 20여일전 삼일절 기념사에서 밝힌 내용, 즉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고, 새로운 방향이 절실하며, 낡은 이념 논쟁을 뛰어넘어 실용의 정신으로 미래로 나아가자"는 방향으로 연설문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다음날 청와대로부터 긍정적인 사인이 왔다. 곧 제주도는 난리가 났다. 위령제 참석예정자의 비표를 발행하기 위한 신원 확인 작업에 돌입한 것이다. 6000~7000명의 참석 대상자 신원을 파악하느라 도청 의전파트와 4·3유족회 등에는 비상이 걸렸다. 그런 준비 과정을 거쳤음에도 그해 이명박 대통령의 4·3위령제 참석은 결국 불발되고 말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자 여러 경로의 실세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도 막강한 세력은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진영과 이 대통령과의 대학 동기인 천신일 회장이 이끄는 고려대학교 교우회로, 세칭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제주 지역구 후보의 건의를 받은 이상득 의원은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을, 그러나 막판에 보수단체들의 집중적인 건의를 받은 교우회 쪽은 위령제 불참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4월3일 4·3위령제가 봉행되던 날, 이명박 대통령을 대신해서 한승수 국무총리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이 제주에 내려왔다. 한 총리는 제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정보를 사전에 보고받고 있는 터라, 매우 신중히 행동했다. 한 총리는 추도사에서 "4·3은 건국의 혼란기에 있었던 비극이며, 유가족과 도민 여러분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정부는 4·3의 진실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나가는데 정성을 다하고 기념사업과 유족 복지사업 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가 직접 내려와 민심을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일주일 뒤 벌어진 총선에서 제주 지역구 국회의원 3석 모두를 통합민주당에 넘겨주는 참패를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시절인 2007년 3월2일 4·3평화공원을 참배한 뒤 "4·3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됐으며, 평가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 5년 동안 한번도 4·3 위령행사에 참석하지 않아 유족들의 마음에 서운함도 남겼다.

☞다음회는 '일본언론의 4·3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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