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14. 에필로그

'기성복 아닌 맞춤복', 참여작가·지역 참여도 결과 달라져
일회성 아닌 장기 프로젝트…지속성 위한 장치 마련 필요
 
마을에는 분명 '변화'가 있었다. 저마다 곱게 차려입은 문화 예술의 옷이 '기성복'일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 땀 한 땀 장인의 손길이 더해지며 명품으로 거듭나는 무엇처럼 '마을미술 프로젝트'는 아직 과정에 있다. 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 하나 특별한 누군가의 재능보다는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가 보태지며 완성형을 만들어낸다는 점도 주시할 만 하다.
 
# 문화예술을 통한 '재생'
 
마을에 다채로운 문화예술의 옷을 입히는 '공공미술'이 지역 활성화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예술가의 손을 빌려 지역의 랜드 마크를 만들어내는 공공디자인은 2000년 이후 '공공미술(public art)'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돼 진화, 발전했다. 이를 통해 미술은 미세혈관을 통하는 핏줄처럼 서민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고 있다. 버스정류장이나 학교, 마을 공원이나 집성촌 등 지역의 역사, 지리, 생태와 문화를 활용해 예술이 살아 움직이는 '지붕 없는 미술관'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있다.
 
2006년에 처음 시행된 '아트 인 시티(art in city)'사업이 일방적인 미술장식 혹은 환경조각 중심사업이었다면 2009년 도입된 '마을미술프로젝트(www.maeulmisul.org)'는 주민참여를 기본으로 하고 지역커뮤니티와의 소통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는 또 지역 또는 참여 예술인의 창작 활동 지원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목적도 포함돼 있다.
 
일단 일반의 삶 속에 예술이 삼투압처럼 스며드는 사업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어촌마을과 삭막한 도시경관을 문화예술로 '재생'시켰다는 점에는 충분한 공감을 얻고 있다. 예술가의 안정적 창작 활동 지원이나 마을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가 미진하다.
 
# '지속 가능한' 위한 고민 필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공공 미술'개념을 도입한 다양한 작업이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제주에서는 이제 연속성과 연결성에 대한 고민도 주문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취지에서 지난해 제주를 포함한 국내 마을미술 프로젝트 현장 10곳과 일본 요코하마시의 '창조 도시' 는 △적절한 테마 선정과 △적극적 지역 참여 유도 △성과 보다는 과정에 무게를 둔 중·장기 계획을 필요성을 확인하는 좋은 모델이 됐다.
 
점묘화처럼 향후 적어도 10년 이상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대한민국 지도에 문화 예술의 깃발을 날릴 대규모 프로젝트의 첫 삽을 떠올린 현장도 있고, 고령화와 농촌 공동화로 늙어가던 마을이며 힘겹게 숨을 토해내던 폐광촌에 건강한 예술 호흡이 스며든 곳도 잇다. 마을의 역사나 상징성을 지닌 콘텐츠를 통해 지역의 가능성을 건져 올린 곳도 여럿이다. 지쳐 주저앉은 마을들에 생명을 수혈하듯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 모세혈관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마을미술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는 충분한 공감과 소통, '다음'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지역 특성과 함께 참여 작가 구성이 다른 만큼 결과물이 같을 순 없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고민은 비슷했다.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예산'에 있다. 예산 운용의 폭이 넓지 않은데다 참여 작가에게 사업계획에서부터 결산까지 모든 역할이 맡겨지다 보니 '지역 작가 지원'이라는 사업 목적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역의 요구와 작가들의 구상이 요철처럼 맞아 떨이지지 않으면서 적잖은 몸살을 겪은 곳도 많았다. 대상지 특성 상 새 옷을 입히기 전 소위 '때 빼고 광내는' 작업에 먼저 지쳐버리기 일수였다.
올해로 4년차인 만큼 충분히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마을미술 프로젝트의 강점이다. 마을의 변화는 그만큼 '사람'을 들게 하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고 미 기자

기고 / 김석범 제주문예재단 운영지원팀장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생활공간 공공미술로 가꾸기 사업으로 지리, 역사, 생태, 문화적 가치가 잠재되어 있는 마을과 거점시설을 공공미술을 통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실제로 전국에서 펼쳐진 마을미술프로젝트는 공공미술을 활용한 문화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마을 커뮤니티를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외부방문객이 찾아오면서 지역주민들은 연쇄점과 마을 카페를 운영하고 손수 만든 기념품과 소품을 아트숍에서 판매함으로써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이루고 지역주민을 마을활동가로 양성하는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과 전남 화순군, 충북 음성군 등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들 지역은 단기간의 사업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주도적인 참여와 지속적인 사업발굴, 이에 걸맞은 추진력이 성공요인이었다.
 
공공미술이라는 범주에서 보면 예술이라는 영역이 공공성을 확산시키고자 갤러리 밖으로의 외출이지만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마을이라는 공동체적 생활권을 대상으로 하는 열린 공간에서의 예술적 행위인 것이다.
 
우리 주변엔 전문예술가들이 일시적으로 상주하면서 만들어낸 공공미술작품을 쉽게 접하지만 정작 지역주민들은 작업 초창기 간담회에 참석한 이후 방관자로 소외되거나 벽화 한 귀퉁이를 색칠하는데 참여한 것이 고작인 경우가 허다하다.
 
외부에서 온 작가들이 스쳐지나가듯 작업한 곳이기에 사후관리는 지역주민에게 고스란히 남겨져 투색되고 벗겨지면서 오히려 흉물로 변했지만 예산도 없다보니 마을에서는 당초 약정한 보존기간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번 제민일보의 지역을 바꾸는 힘 '공공미술' 연재를 통해 살펴 본 성공적인 마을미술프로젝트 현장에서 이런 고민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지만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 마을 커뮤니티를 형성함으로써 사업 추진의 원동력을 지속적으로 충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을 신청하기 위해 예술가와 지역주민이 머리를 맞대어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집행은 공개되었으며 사업이 추진되는 일련의 과정은 예술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하지 않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설득과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원활한 상호 소통을 구축하는데 전체 사업기간의 반 이상을 소비한 현장도 있었다. 기다림에 지치고 이해와 포용에 한계가 있을 법 하지만 일단 소통이 이루어지면 원만하게 추진되었고 지역주민이 오히려 앞장서서 나서는 것이었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외부에서 유입된 예술가의 창작활동의 성과물이라기보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안고 살아가는 마을주민의 예술활동이며 이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구쟁이 꼬마 손부터 어르신의 거친 손까지 지역주민 모두가 참여하여 만든 작품들이 마을에 설치되고 이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보존, 향유,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지는 마을커뮤니티를 형성할 때 마을미술프로젝트는 기나 긴 생명줄을 이어갈 것이며 진정한 가치의 빛을 발하게 될 것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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