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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투쟁의 현장에서 평화를 외치다기획 / 65주기 4·3완전해결을 위하여
4. 다음 세대로의 평화 승계-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
고 미 기자
입력 2013-04-09 (화) 10:14:42 | 승인 2013-04-09 (화) 10:28:47 | 최종수정 2013-04-09 (화) 10:26:38
4·3공원 '다크 투어리즘' 명소 부각 불구 지속성 한계
역사적 비극 체험 넘어 '실천적 평화 학습의 장' 주문
어린이·청소년 눈높이 맞춘 체험콘텐츠 개발 등 필요
 
영화 '지슬'의 흥행 여파로 제주4·3은 더 이상 제주만의 것은 아니게 됐다. 외압에 의해 수 십 년 침묵을 강요받았던 사실들은 이제 '존재 한다'는 이유로 모두의 역사가 되고 있다. 사실 그동안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08년 3월 4·3평화기념관·공원 개관 이후 지역 학생들은 물론이고 매년 수천에 이르는 타 지역 수학여행단과 답사단이 '4·3'과 눈을 맞췄다. '다크 투어리즘'의 명소로 꾸준히 부각되는 동안 지속성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픈 상처에 대한 기억과 추모만으로는 화해와 상생으로 상징되는 제주 4·3의 실질적 회복을 이룰 수 없다. 그런 취지에서 '실천적 평화학습'의 장(場)에 대한 요구는 현실적이면서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 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내 프로세스전시관 자료. 현재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고 미 기자  
 
# 여전히 대립중인 '기억의 공간' 
 
역사는 모든 사람을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의 일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평가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각 정치집단이 특정한 사건을 기억하는 문제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정치적 지향이 상처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리한 면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불리한 부분은 가능한 잊어버리거나 숨기려고 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지상최대의 격전이었던 오키나와 전투와 제주 4·3은 '섬에서 벌어진 근·현대사의 비극'으로 역사에 의해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을 강요당했다는 점 외에도 '평화'라는 포장 희생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리고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둘러 싼 정치 세력 간 갈등과 투쟁, 타협의 굴곡을 탄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4·3평화공원·기념관은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자료관을 모티브로 망각의 역사를 현실로 꺼내놓는 통로역할을 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오키나와 평화기념공원은 1972년 5월 오키나와의 일본 복귀 시점에 맞춰 착수, 1975년 6월 개관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평화'라는 명분 아래  침략전쟁의 당사자'라는 과거의 기억을 희석시키려 한 의도가 다분히 깔려있다. '오키나와전의 역사적 교훈을 올바르게 차세대에 전하고 항구 평화의 수립에 기여하기 위해 개개인의 전쟁 체험을 결집'하는 과정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전시 내용 개선을 요구하는 민간 차원의 목소리가 모아지며 1977년부터 전시 내용의 개선이 시작됐다. 주민의 체험 증언을 중시한 증언의 방을 마련하고, 오키나와전의 전체상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증언을 추출해 전시 스토리를 구성 새롭게 문을 연 것이 2000년 4월 개관한 신관이다. 4000여평 부지에 연건평 3000여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은 자라나는 세대를 위한 공간을 충분히 배려해 지어졌다. 
 
전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전시를 통해 전쟁의 잔학성을 전하고자 했던 현민들의 노력과 오키나와전을 체험한 세대들의 현장체험에 기반한 생생한 육성들, 전쟁에 대한 관점은 해체되고, 본토 중심의 전쟁을 보는 시각에 따른 전쟁에 대한 해석, 오키나와 주민들의 무고한 죽음을 마치 천황의 신민으로 일본제국을 위해 산화해 간 전몰자로 처리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며 지역의 공분을 샀다. 
 
   
 
  ▲ 평화자료관 상설전시실은 역사의 참혹성을 알리는 공간으로 차별화했다. 고 미 기자  
 
하지만 진실을 감추려고 하는 세력과 주민의 입장을 관철하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립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 4·3을 둘러싼 기억의 공간을 놓고 대결하고 있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개관을 앞두고 미리 기획됐던 전시가 부분적으로 훼손되기도 했고 '사건·봉기·항쟁·사태·폭동' 등 다양하게 불리며 '역사적 이름'을 얻한 까닭에 4·3평화기념관에 들어선 비석은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백비(白碑)'로 남아있다.
 
   
 
  ▲ 프로세스 전시관 내부.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평화를 설명하고 있다. 고 미 기자  
 
# 올바른 역사 인식과 평화 승계
 
전시변경사건 등의 홍역을 치르면서도 오키나와평화자료관은 다음을 위한 준비의 끈을 놓치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죽음을 맞은 사람들을 대변할 수 있는 물적 자료의 부족을 전쟁을 체험한 주민의 증언으로 엮어 글과 영상 및 모형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데 하는 외에 청소년을 주요 대상으로 한 프로세스 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5개의 주제별 상설 전시를 통해 전쟁의 잔혹성을 보고 느낀 이들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회랑을 따라 '평화'라는 이름의 공간에 닿게 된다. 청소년을 위한 이들 공간은 상황을 인식하고 느끼고 이해하고 보다 깊게 조사하고 발표하는 일련의 흐름을 거치면서 구조적 폭력이라든지 21세기 평화창조에 관한 문제 등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말 그대로 실천적 평화학습활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을 두 번 죽이는, 무엇보다 정신적인 뿌리를 흔드는 '역사 왜곡'의 함정에서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기도 하다.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 측은 매년 최소 네 차례 이상의 기획전을 통해 지역은 물론 오키나와를 찾는 젊은 세대들의 공감을 유도한다. 오키나와 평화상 수상자나 단체의 활동상을 살펴보는 소규모 전시 외에도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분쟁 사례를 소개하는 것 외에 '평화'라는 대명제를 위해 어린이·청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을 묻고 스스로 찾을 수 있게 구성했다. 전시관 대부분이 어두운 조명 아래 참혹했던 역사를 사실적으로 옮겨낸 것과 달리 이들 공간은 밝았다. 생명의 존귀함과 가치 있는 삶을 오키나와나 일본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개념에서 접근하도록 유도하는 등 보다 광범위한 평화 개념을 도입했다. 대부분 관람객이 상설전시관을 돌아보고 위령탑 등 야외 공간으로 빠져나가지만 일반 참여 공간으로 프로세스 전시관의 활용도는 높은 편이다. 기획전 외에 일반 참여 사진공모전 등의 전시를 함께 진행하며 가족 단위의 접근을 유도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한해 오키나와평화기념자료관을 찾는 관람객 40만명 중 초·중·고등학생이 26만~27만이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시관을 통한 평화 학습의 효과에 거는 기대도 높다.
 
   
 
  ▲ 시마부쿠로 시게요시 평화기념자료관 총괄팀장  
 
시마부쿠로 시게요시 오키나와 평화기념자료관 총괄팀장은 "전쟁의 참혹성만으로는 역사의 단면 밖에 알 수 없다"며 "과거의 잘못을 반성한다면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 프로세스 전시관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시마부쿠로 총괄팀장은 또 "기획전을 위해 민간으로 구성된 위원회 등과 꾸준히 협의하고 어린이·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며 "역사적 교훈을 올바르게 다음 세대에 전하고 항구 평화의 수립에 기여한다는 평화기념자료관 설립 목적을 압축한 공간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끝> 고 미 기자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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