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현재 제주시 용담2동 다끄네 포구에 있는 도대불로 2007년 8월 제주시 해양수산과에서 복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있던 도대불의 형태와는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포구 확장공사로 방파제 2곳에 도대불 축조
일제강점기 때 시설 추정 '잠망등'으로 불려
1970년 전기 공급 전까지 사용 2004년 철거
제주시 2007년 복원 했지만 옛 모습과 달라
제주시 용담2동은 제주시 구도심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용천수가 솟던 '돌새미'(물동산)를 중심으로 촌락이 형성돼 농업과 어업으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마을주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포구를 만들게 됐다. 이 포구가 지금 다끄네 포구로 불리는 곳이며, 어업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도대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 전기 공급 전까지 민간등대 역할
제주시 용담2동 다끄네 도대불에 대한 기록은 지난 2008년 5월 수근동향우회가 발간한 「제22회 수근동향우회 정기총회 및 경로잔치」책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용담동 지역은 400여년전 '돌새미' 주위에 김해김씨, 인동장씨, 제주고씨 등이 모여 살면서부터 마을을 이루게 됐다. 이후 여러 성씨들이 모이게 되자 갯가를 정으로 일일이 손질해 포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닦은개'로 부르다가 다끈개, 닥그네, 다끄네로 변하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포구에도 과거의 어업문화를 보여주는 도대불이 있었는데, 포구 방파제 2곳에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다만 가장 처음 도대불이 축조된 시기에 대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책자에서는 가장 처음 축조된 도대불을 '잠망등'이라 불렀다고 했다. 5단으로 쌓은 원형 기단 위에 삼각기둥 모양으로 된 도대불이 설치돼 있었으며, 탑 위에 놓인 유리상자에는 조막등이 있었다고 했다.
조막등은 용기에 어유를 넣어 솜으로 만든 심지를 꽂아 불을 피웠던 등이었으며, 어유는 각종 생선내장을 썩힌 후 끓여서 만들었다고 했다. 이후 조막등 연료는 석유 등피나 커버이트등으로 바뀌게 됐다고 했다.
'잠망등'으로 불린 도대불 외에 또 하나의 도대불은 1957년 세워진 것으로 기록됐다. 이 도대불은 원뿔형으로 쌓아올리다가 윗부분은 둥글게 마무리했다.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한 1970년 전까지는 남포불을 썼으며, 이후에는 전등으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이 도대불은 전등이 들어온 후부터는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대불의 등화는 어업진흥회가 책임지고 관리를 했으며, 출항한 배들이 전부 입항하기 전에 불이 꺼지면 어부 가족들이 다시 불을 켰으며, 마지막 배가 들어오면 불을 껐다고 했다.
다끄네 도대불은 과거 어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설이었지만 2004년 7월 방파제가 확장되면서 사라지게 됐다고 한다.
이같은 기록은 도시계획가인 이덕희씨가 1997년 펴낸 「제주의 도대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수근동향우회가 2008년 5월 발간한「제22회 수근동향우회 정기총회 및 경로잔치」책자에 실린 도대불 사진. 앞쪽 시설이 다끄네 포구에 처음 들어선 도대불이며, 뒤쪽에 보이는 도대불은 1957년 축조된 것이다.
△ 복원된 도대불 원형과 상이
▲ 다끄네 포구에 맨 처음 축조된 도대불(왼쪽)과 1957년 다끄네 포구에 세워진 두 번째 도대불(오른쪽)
지금 다끄네 포구에는 새로운 도대불이 들어서 있다.
용담2동주민센터와 제주참여환경연대가 지난 2008년 2월 발행한 「용의 신비를 담은 마을 용담2동」에 따르면 2004년 7월 다끄네 도대불이 허물어진 이후 복원작업이 이뤄졌다.
2007년 8월 제주시 해양수산과가 도대불을 다끄네 포구의 상징물로 복원한 것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복원된 도대불은 과거의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높이나 둘레 등 크기가 유사한지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끄네 포구 방파제 확장으로 허물어진 도대불의 정확한 규모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가장 처음 다끄네 포구에 도대불이 축조된 시기에 대해서는 증언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1951년생인 고철용 어영마을회장은 "처음에는 다끄네 포구에 도대불이 1개만 있었는데, 포구가 확장되면서 새로운 도대불이 지어졌다"며 "아마 포구가 생기면서 도대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고 회장의 증언대로라면 다끄네 포구에는 1950년 이전 일제강점기 때부터 도대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다끄네 포구에 최근 지어진 도대불이 과거의 모습과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원형 복원의 필요성이 제시되고 있다.
또 지금의 도대불도 윗부분에 있는 전등이 파손되고 돌이 일부 떨어져 나가는 등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 체계적인 정비 및 관리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특별취재팀=사회부 김경필 차장 대우, 한 권·김하나 기자 / 자문=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김태일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용담동 도대불 취재에서 만난 마을주민이 보여준 수근동향우회의 2008년 발간자료는 뜻밖의 귀중한 도대불 정보를 담고 있었다. 방사탑 모양의 도대불이 포구확장으로 인해 철거됐다가 이후에 복원된 것으로 알았으나 실은 포구에는 두 개의 도대불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는 편의상 구(舊) 도대불과 신(新) 도대불로 부르기로 한다. 가장 먼저 만들어진 구(舊) 도대불은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증언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축조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본적으로 외부계단을 갖는 기단형식으로 북촌 도대불과 애월읍 도대불의 형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작은 규모이지만 원형의 하부와 사각형의 상부라는 독특한 조형미를 갖는 구조와 형식이다. 잠망등 상부에는 용기에 생선기름을 넣어 솜으로 심지를 꽂아 불을 피웠던 조막등을 설치하고 주변을 유리상자로 보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반해 이후에 축조된 신(新) 도대불은 1957년에 축조됐는데 포구가 확장되면서 포구의 가장 끝부분에 자리 잡게 됐는데 전형적인 방사탑의 형식을 하고 있다. 방사탑이라 해도 하부는 원형으로 축조됐지만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일종의 원뿔형식이지만 최상부는 둥글게 마무리돼 기하학적이지만 단순한 곡선의 조형미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구(舊) 도대불에서 사용됐던 조막등과 달리 둥글게 마무리된 상부에는 남포불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좀 더 진화된 방식의 등불을 사용했던 것이다. 1974년 이후에는 전등으로 교체되었다.
두개의 도대불은 용담동 다끄네 포구의 규모에 따라 도대불의 크기도 달라졌던 것 같다. 구(舊) 도대불은 포구가 작고 멀리 어선들이 조업을 나가 작업을 할 수 없었기에 도대불의 크기도 높고 크게 할 필요성이 없었으나 이후에 출항어선들이 늘어나고 포구가 확장되고 점차 멀리 조업을 나서는 어선들도 늘어나게 되면서 도대불의 기능도 그만큼 중요하게 돼 이전보다는 높고 크게 축조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포구발달과 아울러 성장한 도대불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구(舊) 도대불의 높이와 크기를 단순히 확대해 축조하기보다는 방사탑 형식의 도대불을 축조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이다. 아마도 5단의 원형 하부를 가진 구(舊) 도대불의 형식을 토대로 했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원형과 사각형의 형식미를 맞추기 어려워 방사탑 형식으로 축조하였거나 액운을 막고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방사탑 형식으로 세웠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러나 1970년대 마을마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도대불의 역할이 축소되기 시작하면서 사라지게 됐다. 용담동 도대불 역시 계속된 포구확장으로 철거됐다가 이후에 복원했으나 이전의 도대불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형미와는 달리 다소 투박하고 세련미는 떨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