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화유산 제주잠녀] 6부 제주해녀 문화 목록 3. 불턱

▲ 불턱은 잠녀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삶의 공간이다.
해양·돌 문화 콜라보, 접근성·바람 고려 등 민속지식 산실
돌담형에서 시멘트벽, 해녀탈의실로 시대흐름 따라 바뀌어
게석 등 나눔·응원, 여성성 다독이는 행위 문화 등도 주목
 
어느 해인가 문화재청장을 지냈던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작업 중 출연한 한 연예 프로그램에서 제주도의 보물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유 교수 역시 잠녀들의 생명력과 그들이 지니고 있는 민속 지식에 주목했다. 담담이 이야기를 풀어내던 유 교수가 낙점한 보물은 다름 아닌 '불턱'이었다. 잠녀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삶의 공간. 그만한 보물은 없다.
 
현대화 바람에 의미 강탈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해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와 공동으로 「해녀문화유산조사」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역에 있는 불턱과 해신당 관련 자료를 정리했다.
 
제주 잠녀와 관련한 공간·행위 조사와 기록을 위한 작업에서 파악된 도내 불턱은 고작 34곳에 불과했다. '고작'일 수밖에 없는 것이 바다 사정에 따라 한 어촌계당 2~3곳, 많게는 5곳 이상 불턱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최소 200곳 이상의 불턱이 흔적없이 사라진 셈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용중인 불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관리상태가 미흡해 '소멸'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파악됐다. 심지어 '밭담'이 농업유산이자 복합유산으로 조명 받고 있는데 반해 불턱은 물질도구의 변화에 따라 그 기능을 상실했다는 이유를 들어 눈 밖에 나 있는 상태다. 찬찬히 살펴보면 불턱은 제주돌로 울타리를 만든 '돌담형'이 그 원형(原形)이다.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원형(圓形)으로 날선 바닷바람에 잘 견딜 수 있도록 쌓아 올렸다. 밭담은 남성들이 주도해 쌓았지만 이곳은 잠녀들의 손을 많이 탔다는 점이 차이가 난다.
 
▲ 불턱의 옛 모습.
힘든 바다 작업을 전후해 잠녀들에게 '안식'의 의미를 전달하는 공간으로 세월을 먹었지만 '도시화·현대화'란 만만치 않았다. 해안도로를 내는 과정에서 소리없이 허물어졌고 마을 정비 과정에서 자취를 감췄다. 시대가 바뀌면서 돌 대신 시멘트 벽으로 바람을 막은 공간이 만들어졌고 다시 현대식 시설이 갖춰진 '해녀탈의실'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불턱이 지닌 의미마저 강탈되는 믿지 못할 일이 생겨났다.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지 않으면 보존·관리가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불턱은 여전히 제주 잠녀들의 상징적 공간이다.
 
지금이야 정부까지 나서 '제주해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추진하면서 사정이 달라졌지만 지난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불턱을 지역 문화재로 지정하는 일은 늘 후순위였다. 수년에 걸쳐 이어졌지만 잠녀·잠녀문화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이들 공간을 문화재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주특별자치도문화재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불가능한 이유만 도출됐다. 하다못해 이를 잠녀문화콘텐츠와 연계하는 방안도 현실화시키지 못했다.
 
▲ 잠녀와 옛 불턱의 모습(사진 왼쪽), 불턱에서 몸 녹이는 제주 잠녀들(사진 오른쪽).
'그들의 삶'이 만들어진 곳
 
그러기에 불턱이 지닌 의미는 크다. 어른 걸음으로 반나절 정도면 돌 수 있는 가파도에만 불턱이 서너곳 됐다. 가파도 잠녀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바람 방향에 따라 작업을 하는 바다가 바꿨고 그 때마다 다른 불턱을 사용했다. 불턱은 또 일반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와는 다른 잠녀들만의 규약이 우선되는 공간이기도 했다. 불턱 한 가운데 불과 가까운 곳은 상군들의 몫이었다. 아직 물질이 서툰 아기잠녀들을 위해 상군들이 슬쩍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먼저 자리를 뜨기도 했다. 불턱 안에서 벌어졌던 일은 절대 불턱 밖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여성이 둘 이상 모인 자리에 갈등이나 시기가 없다면 거짓말이고 그 수가 수 십명이 넘었으니 시끄러운 정도가 상중하 기준에 '중'은 충분히 넘었을 터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 노잠녀의 넋두리 중에도 이와 관련한 일화가 있다. 바깥물질을 다녀온 사이 지역에 남았던 다른 잠녀가 아내이자 엄마, 며느리였던 자신의 자리에 있었더랬다. 어이없고 분한 마음에 머리채라도 잡으려고 했지만 상군잠녀는 그런 할머니를 붙들었다. "불턱 안에서 하고 싶은 대로 소리도 지르고 화도 내라고 하더라. 한참 악을 쓰고 나니 손발이 떨리는 게. 그 때 그러더라고. '이 안에서 풀었으니 됐다. 이제 가지고 나가지 마라'. 그 때는 무슨 말인가 했지. 그런데 그렇게 다 한 마을에서 살았어. 시간이 지나니까 아이들도 오가고 맘도 풀어지고. 그렇게 살아지더라고"
 
그뿐만이 아니다. 해녀탈의실로 바뀐 공간에서도 잠녀들은 작업 전후 나눠 먹을 따뜻한 먹을거리를 공동으로 마련한다. 특별히 먹는 것은 없지만 쉽게 데울 수 있고 한 그릇으로도 바다작업으로 언 몸을 녹이기에 적당한 것을 메뉴로 고른다. 어촌계별로 국수를 삶아 두는 곳이 있고, 누룽지나 죽을 챙기는 곳도 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눈다.
 
작업이 끝난 뒤 아기잠녀나 할망잠녀의 홀쪽한 망사리에 슬쩍 한 웅큼 물건을 넣어주고 다음을 기약하는 게석 문화가 만들어진 곳도 다름 아닌 불턱이었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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