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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사회/복지 제주4·3, 어둠을 넘어 빛의 역사로
4·3 진실 찾아 국내·외로 알리다<1부>진상규명 활동 ② '4·3은 말한다'
김영헌 기자
입력 2014-03-26 (수) 19:24:31 | 승인 2014-03-26 (수) 19:31:39 | 최종수정 2014-03-26 (수) 20:15:17
   
 
  ▲ 제민일보 사옥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 촬영한 4·3취재반.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재철·고대경·강홍균·고홍철·김종민·양조훈.  
 
1989년부터 10년 넘게 456회까지 연재
방대한 자료·현장 취재…전국서 반향
진상 규명·명예회복 밑거름 제공 평가
 
4·3진상규명 활동은 1987년 이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제주사회 각계각층에서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 중 본보의 장기연재 기획물인 '4·3은 말한다'는 수십년간 금기시 됐던 4·3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 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1988년 특별취재반이 구성돼 1년 동안 취재가 이뤄졌고, 그 결과물이 1989년 4월3일 1회 연재를 시작으로 1999년까지 456회에 걸쳐 10년 넘게 연재됐다.
 
'4·3은 말한다'는 그 자체로 역사가 됐고, 4·3이라는 화두를 제주사회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제시함으로써 4·3을 대중화하는 계기가 됐다.
 
 '4·3은 말한다'의 시작은 1988년 3월5일 제주신문 4·3취재반 결성부터 시작됐다. 이어 1년간의 취재결과를 토대로 1989년 4월3일 제주신문 1면 기사로 '40년 침묵의 비극사가 입을 연다'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 한국 언론사상 처음 시도한 4·3연재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1990년 제주신문 폐업으로 4·3연재는 중단됐고, 1990년 6월2일 '제민일보' 창간호부터 '4·3은 말한다'는 제목으로 다시 연재가 시작돼 10년 넘게 4·3의 진실을 파헤쳤다.
 
'4·3은 말한다'는 도내 곳곳의 마을은 물론 서울·부산·일본 등지에 취재진을 파견해 자칫 역사에 묻힐 수도 있었던 제주 4·3의 생생한 과거를 담아냈다.
 
또한 채록한 증언자만 6000명을 넘어섰고, 자료는 미군 비밀문서와 미국·일본에서 찾아 낸 4·3관련 자료 등 국내외 2000여종에 이르는 등 방대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한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보도는 국내외로부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한국기자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외국 언론으로부터도 4·3취재반 활동이 대서특필됐다.
 
'4·3은 말한다'는 1999년 8월28일자 '초토화작전-삼양리'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1990년 6월 제민일보 창간 이래 10년 동안 456회가 연재된 것이다. '4·3은 말한다'는 5권의 책으로 다시 묶여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출판돼 4·3체험세대뿐 아니라 2,3세들에게도 왜곡됐던 '4·3'의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은폐된 역사를 정면으로 파헤친 '4·3은 말한다'는 창간이후 10여 년 간 수많은 자료와 현장취재를 통해 땅속에 묻혀 있던 역사를 캐내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4·3진실규명 과정이 또 하나의 역사"

인터뷰 / 양조훈 전 4·3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어둠 속에 덮여졌던 4·3의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역사가 됐다"

양조훈 전 4·3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4·3의 역사는 두가지가 있다"며 "하나는 4·3의 역사 그 자체와, 또 하나는 4·3 역사를 찾기 위한 수십년간 진행된 진실규명의 역사"라고 밝혔다.

양 전 위원은 "4·3 진실규명 역사 중 '4·3은 말한다'는 중요한 한 부분으로, 보도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며 "또한 1988년 당시 4·3취재반장을 맡아 10년 넘게 '4·3은 말한다'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취재과정에서 공안당국의 방해로 끊임없이 이어졌고, 당시 4·3은 예민한 문제이어서 한치의 오차나 실수가 허용되지 않았다"며 "자칫 잘못하면 신문사의 존폐가 걸려있었기에 스스로 철저하게 검증과정을 거쳐 보도했다"고 덧붙였다.

양 전 위원은 또 "'4·3은 말한다' 보도 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당초 500회를 연재하기로 계획했지만 외압 등으로 456회로 중단되면서 마무리를 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양 전 위원은 "2003년 수석전문위원을 맡아 4·3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하면서 대정부 7대 건의안 초안을 작성했다"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대통령 사과이고, 이어 두 번째가 국가추념일 지정이었다. 이번 4·3국가추념일 지정이 된다는 소식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고 밝혔다.

김영헌 기자  cogito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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