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마을의 유래를 찾아서] 14.예래동

관광의 중심지 우뚝 '색달마을'
색달마을은 예래동 위쪽에 있는 중산간 마을로 천제천을 사이에 두고 중문동과 접해있고 서쪽은 색달천을 사이에 두고 상예동과 서북쪽은 안덕면 그리고 북쪽은 제주시 애월읍과 접해 있다.
색달마을에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는지는 옛 문헌들을 뒤져도 정확하게 찾아내기가 어렵다.
고려때 원나라 군사를 내쫓고 국권을 회복하여 1374년에 제주에 14현촌을 설치할 당시 예래현이 있었으므로 이때에 색달마을 경내에도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때 현에 호장(戶長)을 두어 다스렸는데 큰 현(懸)에는 호장 3인 중현에는 호장 2인 작은 현에는 호장 1인을 두었다.
색달마을 들렁궤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으로 보아 색달마을 경내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현의 설치보다 100~200년전 쯤으로 보아진다. 색달동 2610번지에서 기왓장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다.
이 인근을 주승케라 부르며 1730년대 호조참판 김명헌씨가 호근리에서 주승케 고(高)씨 문중으로 장가들고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이보다 앞서 1600년대에 유지남드르(생수물 북쪽)에 사람들이 입주해 왔다.
이때부터 신작로 남쪽인 주승케를 알색달리라 불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즉 일주도로 남쪽에서 일주도로 북쪽으로 주거지가 옮겨진 셈이다.
색달마을은 현재 본동과 군남동, 천서동 등 3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948년 4·3사건 당시 소멸했다가 1951년에 재건된 마을이다.
최근에는 중문해수욕장 등 천혜의 자연 경관에다 중문관광단지 등 다양한 관광객 이용시설들을 갖추고 있어 국제 자유도시로 비상하는 제주도 관광의 심장부로 거듭나고 있다.

2000년 역사 숨결 상·하예 마을
상예마을은 약 2000년 전에 개깍으로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상예마을 '상뒷동산' 아래쪽, '정문동' 서쪽과 그 아래쪽 일대에서 확인되는 탐라 전기의 고인돌과 '개깍' 폐수처리장 서쪽 '볼래낭소' 일대의 바위그늘 집자리, 유산포지 등에서 확인되는 유물 등을 고려할 때 적어도 1500여년 전부터 사람이 들어와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지인 상예동 적석시설물과 고려 시대에 목종 10년(1005)에 굴메의 용출, 숙종 10년(1105)부터 충렬왕 26년(1300)까지 열리라 마을 이름을 불러왔다.
더욱이 충렬왕 26년(1300)부터 조선 시대 태종 16년(1416)까지 예래현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다가 태종 16년(1416)부터 영조 21년(1745)까지 예래촌·예래리라 마을 이름을 불러왔다. 영조 21년(1745)부터 예래리가 분리되어 상·하예래리로 고종 7년(1860)까지 이어졌다.
고종 7년(1860)부터 1981년 7월 1일까지는 상·하예래리가 상·하예리로 바뀌었으며 1981년 7월 1일부터 현재까지 상·하예동으로 마을 이름을 부르고 있다.
하예마을은 예래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하예마을은 960여년 전에 '자스름' 동남쪽에 있는 '남바치' 일대에 진주 강씨와 임(林)씨가 들어와 살았고, '노리물, 전신당, 빌렛거리' 일대에도 임(任)씨와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설촌됐다고 전해지고 있지만 상예마을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만큼 더 일찍부터 마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든드르·뜬드르' 남동쪽 일대의 유물산포지와 '당캐' 동쪽 일대에서 확인되는 바위그늘 집자리 등에서 확인되는 유물 등이 이를 입증한다.
'하동(동난드르)' 일대를 하예2동이라 하고, 하동은 서쪽의 안덕면 대평리 '난드르'와 구분해 '동난드르'라고도 하며 '당캐'와 '당캐연대'가 있었다.
'든드르' 일대의 중동과 '개통거리'와 '돔벵이물' 일대를 하예1동이라 한다.
1981년 7월 1일 서귀면과 중문면이 병합해 서귀포시로 승격할 때 상예리와 하예리를 행정상 예래동이라 하고 법정상으로는 상예동과 하예동이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김지석 기자
캄캄한 밤 밝히는 신비한 생명 |
| 반딧불이 보호지역 1호 지정 캄캄한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올라 수를 놓는 반딧불이의 군무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울까. 예래마을은 2002년 6월 28일 한국반딧불이 연구회에서 반딧불이 보호지역 제1호로 지정한 대표적인 환경보존구역으로 녹색농촌 체험마을과 관광어촌 시범마을에 이어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지정되는 등 도내 최고의 생태마을로 꼽히고 있다. 특히 예래마을에서는 대왕수천을 생태하천으로 조성, 예래휴양형주거단지와 연계한 관광객유치와 주민수익사업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생태체험관과 자연생태공원조성, 대왕수천 산책로주변 꽃길조성, 참게·미꾸라지·다슬기 서식지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왕수'는 물길이 곱고 끊이지 않아 사람에게 이롭다는 의미로 예로부터 대왕물(큰이물)이라 불렸으며 천혜의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빼어난 자연경관과 해안절경이 조화를 이루고 청정지역에서만 자라나는 다양한 야생화와 들꽃, 들풀, 그리고 깊숙이 숨어있는 작은 곤충들이 자연과 하나 돼 소음이 섞이지 않은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