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정약용「유배지에서 보내온 편지」

▲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보낸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지난 시간 공부는 왜 하는가에 대해 공자의 「논어」를 통해 살펴보았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의 기쁨, 그것은 영혼을 살찌우는 일이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생존의 위협이 와도 배운다는 것, 앎의 기쁨만으로 견딜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을 정약용의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한국의 정신사에서 가장 왕성한 업적과 학문 활동을 한 이를 손꼽으라면 단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그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실학자며 시인, 철학자, 과학자, 역사학자, 지리학자였다. 생전에 남긴 저서만 해도 500여권이 넘는다. 전부 유배지에서 거둔 성과이다. 
 
그의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 전·후반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반의 인생이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면, 후반은 '신유사옥' 여파로 정치범으로서 세상과 단절하여 칩거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 유배 생활 18년 암흑과 같은 고통의 나날이었지만 결과는 오늘날 그를 평가하는데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현재도 이어져오고 있는 다산학파의 학문적 계승을 통해 한국철학과 과학의 계보를 잇는데 한 획을 긋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그의 저서 몇권은 초·중·고생의 귀에도 익숙하다. 예를 들면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와 같은 것들이다.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내온 편지」는 18년간 유배생활을 한 전남 강진에서 한양에 있는 자식들, 형제들, 제자들에게 보낸 글들을 다산연구소 박석무 소장이 번역한 책이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자세로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조언, 형과 아내에게 묻는 안부, 임금을 섬기는 법과 인재등용에 관한 생각, 유배지에서 인간으로서 갖는 고뇌들을 담담하게 토로하고 있는 책이다.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는 인간의 실천 덕목으로서 '효'와 '제', '근검의 생활화', '노동의 정직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학문에 정진하지 못하는 아들의 행실을 따끔하게 꾸짖는 대목,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부분, 아픈 아내를 걱정하는 인간적인 정이 돋보인다. 
 
 
18년간 유배생활 한 전남 강진에서

한양에 있는 자식·형제·제자들에게 보낸 글

효와 제, 근검의 생활화, 임금을 섬기는 법

인간으로서 갖는 고뇌 등을 담담하게 토로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 해를 보는 경우이다.
-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내온 편지」,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췌
정약용은 시인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중국의 고전시집인 「시경(詩經)」을 읽고 읊은 다산의 시인데 그의 시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古人百計格君心 誦工歌被素琴 全把國風兼二雅 直須看作諫書林(고인백계격군심 / 몽송공가피소금 / 전파국풍겸이아 / 직수간작간서림) 「詩五首」
 
옛사람들 온갖 방도로 임금 마음 바로잡으려 했지 / 장님들 입으로 외고 악관들 거문고 타며 읊었다네 / 국풍·소아·대아까지 모조리 가져다가 / 곧장 임금 간(諫)하는 글로 여겼다네  
 
다산이 생각하는 시는 임금이 통치를 잘해 백성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 전문가 박석무 선생의 글에 의하면 "통치자의 잘못을 간(諫)하고 비판할 내용이 없는 시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라는 게 다산의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시대를 비판하고 임금을 비판하는 시만 쓴 것은 아니다. 그가 아내에게 바치는 시 「하피첩에 부쳐」를 보면 그의 절절한 아내 사랑과 아픈 아내를 두고 한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읽을 수 있다. 
 
하피(霞    )는 본래 조선시대 왕실의 비(妃)나 빈(嬪)들이 입던 옷을 뜻하는데, 정약용은 아내 홍씨가 보낸 '붉은색 치마'를 '하피'(붉은 노을색 옷)라고 했다. 
 
다산의 아내 홍씨는 열여섯에 한살 연하인 정약용에게 시집 와 자식 아홉을 낳는다. 하지만 그 중 여섯은 죽고, 남편은 유배의 몸이 된다. 그녀의 나이 쉰 쯤에 남편 다산에게 빛바랜 다홍치마 여섯폭을 강진으로 보낸다. 그녀는 이미 병 중에 있었다. 빛바랜 붉은 치마를 받은 다산은 그 치마를 잘라서 넉 점의 조그만 서첩을 만든다. 그리고 그 표지에 "하피첩(霞帖)"이라 썼다.
 
18년 동안의 긴 유배생활에서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던 다산은 병든 아내와 아들들에게 당부하는 글을 써서 보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다산의 시, '하피첩'이다. 그리고 3년 후 나머지 조각을 이용해서 매조도(梅鳥圖)를 그린 가리개를 만들어 시집간 딸에게 보냈다. 
 
매조도(梅鳥圖) 여백에는 아래의 시를 써 넣었다. 
 
翩翩飛鳥(편편비조) / 息我庭梅(식아정매) / 有烈其芳(유열기방) / 惠然其來(혜연기래) / 爰止爰棲(원지원서) / 樂爾家室(낙이가실) / 華之旣榮(화지기영) / 有賁其實(유분기실)
펄펄 하늘을 나는 새들이 / 우리집 뜰 앞 매화가지에서 쉬는구나 / 꽃다운 그 향기 은은하기도 하여 / 즐거이 재잘거리려 찾아왔나보다 / 이렇게 이르러 둥지를 틀고 / 너희는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 꽃은 이미 활짝 폈으니 / 이제 토실한 열매가 많이 달리겠구나 
 
다산의 시를 읽다보면 그 어떤 철학서나 문학서보다 깨우침이나 울림이 크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학문의 길이 무엇인지 조목조목 일러주는 것보다 한편의 시로서 "둥지를 틀고", "즐겁게" 하는 것이 사는 일이라는 걸 다산은 담담히 일깨워주고 있다. 제주대 평생교육원 강사

病妻寄敞裙(병처기산군) / 千里託心素(천리탁심소) / 歲久紅己褪(세구홍기퇴) / 恨然念哀暮(한연염쇠모) / 栽成小書帖(재위소서첩) / 聊寫戒子句(요사계자구) / 庶幾念二親(서기염이친) / 終身鐫肺腑(종신호폐부)

병든 아내가 해진 치마를 보내왔네 / 천 리 먼 길 애틋한 정을 담았네 / 흘러간 세월에 붉은빛 다 바래서 / 만년에 슬픔을 가눌 수가 없구나 / 마름질로 작은 서첩을 만들어 / 아들을 일깨우는 글을 적는다 / 부디 어버이 마음을 잘 헤아려 /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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