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잠녀'6부-제주해녀문화목록19. 문학 작품 속 잠녀2

제주 근·현대사 서술자로 활용 존재감 확인
한림화 '2분30초'등 특유 문화 접근 시도도
문학 작품 중 '소설'은 허구성과 진실성, 개연성, 서사성, 산문성 등의 특징을 갖는다.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라기 보다는 '진실됨'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허구라는 장치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내용이 현실감 있다는 것은 '사실의 재생'이라는 의미 외에 진리와 진실의 전달이라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인물, 사건, 배경을 갖추고 일정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의 형식은 충분히 '역사책'하나를 섭렵하는 효과를 준다.
'잠녀'이미지 서술
현기영 소설가는 잠녀 보다는 4·3문학과 더 인연이 깊다. 제주의 근대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제주가 안고 있는 슬픔을 기록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그런 그가 해녀·해녀문화를 옮긴 것은 그들의 삶이 제주 역사와 사회 흐름을 반추하게 하기 때문이다.
소설집 「마지막 테우리」(창작과 비평사, 1994년)'에는 갯마을 우묵개 출신의 간난이를 통해 우리나라, 그리고 제주의 근대사를 훑어가는 단편 '거룩한 생애'가 실려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우리가 '잠녀'라는 단어 아래 흔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조목조목 정리돼 있다. 열 서너살 나이에 어머니에게 물질을 배우고 해녀 특유의 공동체 문화를 익히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 바깥물질과 관련한 사정, 한 가정의 가장 역할과 사회 흐름 속에서 어떤 고충을 겪어야 했는지를 길지 않은 호흡으로 써내려갔다.
제주에서 바닷가 근처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은 놀이처럼 물질을 배웠다. 물질을 하면서 지켜야할 규칙은 글로 써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운다. '거룩한 생애'에서도 "초경의 붉은 꽃잎이 내비치기 시작하던 열세살에 간난이는 어머니를 따라 물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조그만 뒤웅박을 안고 얕은 물에서 새끼 오리처럼 조짝조짝 걸음마 헤엄을 배우고 퐁당퐁당 자맥질을 배웠다. 봄풀처럼 한 창 자랄 때인지라, 쑥쑥 길어지는 팔다리에 힘살이 붙고 담력이 생김에 따라 차츰 깊은 물로 나아갔다. 어머니는 어느 물, 어느 바위에 무슨 물건이 있는지 일일이 가르쳐 주었다"
오랜 경험 바탕 민속지식
동료들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 잠녀들은 '어디서'를 먼저 묻는다. 물에서 목숨을 잃었는지를 확인하는 절차다. 작업 중 사고는 십중팔구 '물숨'을 들이킨 때문이라고 본다.
고령화로 인해 신체기능이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잠녀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물숨을 피한다. 혼자 작업하는 것을 금기시 하는 것도 경험에서 얻은 지혜다. 시간을 조금 뒤로 돌려 속곳 대신 고무옷을 입는 시기의 잠녀를 소재로 한 한림화 소설가의 단편소설 제목인 '2분 30초'는 그네들끼리 통하는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갑자기 혼자라는 생각을 하자 두려워졌다. 저만큼 누구 것인지 물갈퀴가 흔들리고 있었다. 가까이 와서 나를 좀 도와줬으면…. 그러나 생각 뿐 물갈퀴는 서서히 내 시야를 벗어나 버렸다.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아파왔다. 너무 눈이 아파서 더 바둥댔다. 물안경을 벗어버리면 괜찮을 텐데, 그것도 어렵다. 몸이 노곤해져왔다. 잠을 자고 싶었다. 어느새 나는 잠시 잠에 빠지기도 했다. 숨을 못 쉬는 고통이 사라졌다. 갑자기 어련 시절이 명료하게 가슴을 파고 들었다. 아니 내 눈앞에 그 시간이 열려있었다.….아 어린시절, 그때는 그랬었고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순식간에 온 바다 밑이 보였다가 또 갑자기 사라져버려 눈앞이 캄캄하곤 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나는 미역처럼 한 쪽 손을 전복한테 잡힌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몸이 편안했다. 무지몽매한 여편네. 난 어린 아들도, 재혼해 떠라나고 닦달하는 억센 시어머니도 모두 잊고 오직 한 포기 해초가 되어 물밑에서 한가로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정신은 차차 혼미해지고 나는 내가 사람인지, 해초인지, 아니면 보잘 것 없는 한낱 미물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게시리 바다 밑에 잘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퍼뜩 눈을 떴다. 물안경이 몇 갠가 내 얼굴로 다가들었다.…나는 그녀들에 이끌려 두둥실 물 위에 떴다.….이젠 됐져. 내 새끼. 어멍은 살았져"
바깥 물질 사정 고백도
멀리 러시아까지 벌이를 찾아 바다를 건넜던 사정은 비교적 복잡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였지만 섬이란 고립된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심리도 영향을 미쳤다. 현기영의 '거룩한 생애'에서는 "홀어머니와 어린 오랍동생을 찌든 가난 속에 내팽개쳐두고 시집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집가기 전에 집안 살림을 다소 낫게 일구어보려고 여간 악착같이 굴지 않았다. 그러나 때가 왜정시절이라, 어업조합이라는 착취기관의 그물에 갇힌 잠녀신세로서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는가. 그래도 그 중 육지벌이가 좀 나은 편이어서 육지부로 물질 다니기 시작했다. 육지물질은 특히 처녀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단 한번이라도 갔다 오지 않으면 시집도 안 간다고 떼 쓸 정도였다. 아이가 딸리면 운신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돈도 돈이지만 시집가기 전에 섬 밖 구경을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큰 화통으로 어마어마하게 연기를 토하는 연락선도 타고 싶고, 간 떨어지게 꽤액 소리 지르며 내달리는 기차도 타보고 싶고, 부산 해운대 여관밥도 먹고 싶고, 대마도에서 젖가슴 드러내놓고 물질한다는 왜년들도 구경하고 싶고, 멀리 노령 땅 블라디보스톡에 가서 호말같이 크고 억세고 머리칼 붉다는 로스케 년들도 구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의 호기심일 뿐 반년간의 객지생활은 언제나 고달팠다"고 적고 있다.


아쉽게도 제주에서 만난 잠녀는 아니지만 당시 바다 건너 바깥물질을 나섰던 잠녀들을 찬찬히 살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옮겼다. 잠녀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지 않은 상태에서 철저히 관찰자적 시선을 유지한 접근이 재미있다.
내용을 보면 "그렇게 튼튼한 몸에(머리에는 수건을 감고) 마치 해수욕복장 같은 간단한 옷을, 어깨에 멜빵을 걸어 배와 허리와 볼기만 간신히 가리고 나서서, 바다에 잡은 것 담을 굵은 망태와 속만 훑어 닦아낸 큰 뒤웅박을 들고…" "머리에 감았던 안경(마치 비행하는 사람이나 자동차 운전수의 커다란 안경과 똑같은 것)을 내리어 눈에 쓰더니…" 등 고무옷 도입 전 물적삼과 물소중이, 물수건, 눈을 표현한 부분이 나온다.
물질과 숨비소리에 대한 표현도 재미있다. "눈 깜짝할 동안에 머리가 물속으로 쑥 들어가면서 두발이 빳빳하게 물 위에 솟더니 그래도 물 속으로 쑥 들어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더니 입속으로 하나 둘 셋 넷 하고 서른 다섯까지 헤일 동안, 물 속에 있다가 다시 물 위로 불끈 솟아나더니, 저혼자 떠다니는 박과 망태를 좇아가 붙잡아서 박을 가슴에 안고 물 위에 가만히 엎드려서 쉽니다. 물 속에서는 전혀 숨을 쉬지 못하니까, 물 속에서 숨이 가쁘고 된 즉 숨을 쉬려고 얼른 나오는 것이랍니다.
그래 나와서는 한동안 참고 있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므로 숨쉴 때 입에서 홱!하고 기적같은 소리가 납니다"
"야아, (오늘) 대맹이를 깨겠구마"하는 그들 특유의 위트도 인용했다. 흐린 날 작업을 하면 물속 시야가 좋지 않아 바위에 머리를 부딪치기 쉽겠다는 경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