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주도시 패러다임 바꾸자 3. 랜드마크

대규모 자본 조성 경계…"장소에 대한 인지" 강조
'한라산-오름-하천-해안선-유적' 정체성 활용 과제
광복이후 전형적인 농촌마을 형태였던 제주도시는 1961년 최초로 아스팔트 도로가 건설되고, 상수도도 설치되면서 큰 변화가 시작됐고, 이를 두고 '물의 혁명'과 '길의 혁명'이라고 표현된다. 시간이 흘러 2000년대에는 국제자유도시가 추진되면서 제2의 도시혁명이 시도됐다. 하지만 국제도시에 걸맞는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자본에 의한 초대형 건물 조성 계획이 잇따라 발표지만 논란만 가중되고 있을 뿐이다. 초고층빌딩이 아닌 제주의 전통과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거리와 건축물을 제주도시의 상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규모경쟁 랜드마크 딜레마
랜드마크(Landmark)란 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는 시설이나 건물로 정의할 수 있다. 물리적·가시적 특징의 건축물 또는 시설물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추상적인 공간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의 지자체들이 도시 랜드마크 조성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초대형건축물을 선호하고 있다.
제주도 역시 국제자유도시 추진 이후 건축과 토목사업들이 대규모화와 대형화되는 추세에 랜드마크라는 명목하에 초고층빌딩 계획이 잇따라 발표된 상황이다.
지난해 13월 노형동 노형오거리 인근에 높이 218m에 지상 56층 규모의 쌍둥이 빌딩을 건설하는 '드림타워 건설계획'이 조건부로 승인나면서 제주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사업자인 녹지그룹은 2017년 3월까지 호텔 908실, 콘도 1260실 등 56층 건물 2개 동을 건설하며, 당초 지난해 6월 중에 착공한 후 2017년 완공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업자측은 쌍둥이 초고층빌딩이 건설되면서 제주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강조했지만 경관훼손 및 교통혼잡, 안전문제, 주변 생활환경 피해 등의 논란이 불거지며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지난해 11월 드림타워의 건물높이를 56층에서 38층으로 낮추는 수정계획안이 수립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제주의 대표관광지이자 천혜의 해안절경을 간직하고 있는 중문관광단지 인근 예래동에도 휴양형 주거단지의 랜드마크 명목으로 250m 높이에 45층의 초고층빌딩이 건설계획이 포함되면서 자연경관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졌다.

'랜드마크=초고층빌딩' 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현재 제주지역도 다른 지역처럼 도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초대형건축 프로젝트에 동참하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랜드마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하며, 특히 대규모 자본이 주도한 랜드마크 조성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저명한 도시학자인 케빈 린치는 "랜드마크는 건축물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장소에 대한 인지"라고 강조했다.
랜드마크는 역사적인 전통공간이나 현재 시민들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을 활용해 장소의 활용성을 높인다면 도시의 상징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산광역시의 경우 해운대 인근을 중심으로 초고층의 마천루가 랜드마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제시장과 남포동 일대, 대표적인 공공미술프로젝트 성공사례인 감천문화마을도 부산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군산시가 1920~30년대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인 군산근대건축관(조선은행 군산지점), 군산근대미술관(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장미(藏米)공연장 및 갤러리(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 창고, 적산가옥) 등을 활용해 근대문화도시로 상징화하고 있다.
또한 전주시의 경우 2005년 6월 효자동에 18층 규모로 새로 전북도청사가 이전했고, 주변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전주시의 랜드마크는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한 전통문화의 거리다.
제주지역도 역시 '한라산-오름-하천(건천)-해안선-유적'이라는 특유요소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제주도시의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관덕정과 주변광장, 목관아, 제주성지 등을 아우르는 문화지역과 부산의 국제시장처럼 동문시장를 중심으로 해병대상징탑 그리고 현재 조성중인 탐라문화광장을 연계한다면 제주의 랜드마크로 부각될 수 있다.
제주도가 '문화창조도시'와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통해 제주의 정체성을 확립하겠다고 밝힌 만큼 신도심 역시 건축의 규모보다는 경관과 환경이 조화되면서 기능과 역할에 맞는 창의적인 도시건축을 통해 랜드마크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본이 주도하는 대형건축물에 중심의 랜드마크는 제주도에 도입돼서는 안된다. 문화와 환경이 어우러지면서 공공성을 띈 공간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양상호 국제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교수는 "서양의 도시들은 주로 평지에 성곽을 둘러싸인 형태로 형성되면서 주변을 살피기 위한 높은 건물이 필요했고, 이것이 랜드마크의 시초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와 제주의 도시내에는 산이 언덕 등이 있기 때문에 높은 건축물이 필요치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양 교수는 "어느 도시는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빼놓고 도시계획이 이뤄져서는 안된다"며 "특히 제주에 왜 랜드마크가 필요한가. 어떠한 것이 상징성을 지니고 있나를 심도있게 연구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대도시를 중심으로 초고층빌딩 건축을 통해 랜드마크를 만들겠다고 강조하지만 제주에서도 이러한 방식이 필요한가 생각해야 한다"며 "랜드마크에 환경과 문화, 도시민의 생활패턴 등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 교수는 "연동과 노형 주변에는 많은 오름들이 분포돼 있어 경관과 조화된 도시상징이 필요하고, 반드시 시민들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며 "대규모 자본 중심에 경제적 논리로만 접근해서 랜드마크가 추진되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 "원도심의 경우 동문시장과 동문로터리, 현재 조성중인 탐라문화광장을 큰 축으로 관덕정과 목관아를 연계하는 제주의 상징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며 "신축도 필요하지만 현재 존재하는 도시자원을 활용해 랜드마크를 만드는 방안도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앞으로 도시는 독창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고, 시민이 보다 편하고 윤택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며 "고층건물이 아닌 제주가 추구하는 문화도시와 생태도시에 걸맞는 랜드마크가 무엇인지 공론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