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자전거」

이 영화에는‘북경’(베이징)하면 떠오르는 천안문도 없고 자금성도 없다. ‘자전거’하면 연상되는 낭만적 공식도 없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류의 팬시영화의 장면은 「북경 자전거」에 해당사항이 없다.

「북경 자전거」는 작은 자전거에 거대 중국을 실은 영화다. 중국의 중하층 사람들이 사는 북경 후통거리. 그 남루하고 구질구질한 뒷골목을 빠져나갈 듯 달려가는 자전거, 그것은 영화의 풍경을 이루고 자본주의 중국의 현재를 비춘다.

자전거의 나라 중국. 자전거를 도둑맞은 소년 구웨이와 그 자전거 장물을 산 지안, 두 소년이 한 대의 자전거를 놓고 벌이는 에피소드가 영화의 축이다.

장이모, 첸카이거를 잇는 중국의 ‘제6세대’ 대표감독 왕 샤오슈아이(王小帥)는 자전거 절도라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전환기 중국사회의 해부도를 완성해 냈다. 2차대전 직후 이탈리아의 피폐한 일상을 그린 영화 「자전거 도둑」처럼, 자본주의로 진입중인 중국의 그늘을 따라간다.

그러나 동시에 자전거를 돌려 타면서 ‘협상용’ 담배를 배우면서 어른들의 세계로 진입해 가는 두 소년의 모습은 「천국의 아이들」을 닮았다. 운동화를 함께 신던 천진한 남매의 눈에 비친 남루한 현실이 이 영화에서는 자전거 바퀴를 따라 구른다.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생계수단이고, 지안에게 자전거는 신세대 문화코드다. 이 상이한 두 10대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 빈부가 교차하고 공존하는 중국의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결국 나름대로 절실한 자전거를 공유하기로 한 두 소년이 “네 이름이 뭐니?”하고 물을 때, 몰매를 맞고도 망가진 자전거 바퀴를 꼭 붙잡으며 널브러지는 구웨이의 모습에서 미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중국을 끌고 가는 북경 자전거의 힘이 아닐는지.

1993년 데뷔작 「나날들」로 중국 검열당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왕 샤우슈아이 감독의 「북경 자전거」는 역시나 중국에서 상영금지 판정을 받았다.

반면 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는 심사위원특별상(은곰상)을 선사했고,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최고 화제작으로 갈채를 받았다.

로우 예 감독의 「수쥬」에서도 후미진 중국 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조우 쉰이 도시 처녀로 등장해 관심을 끈다. 17일 개봉.

◈「흑수선」

중견감독의 컴백이 요즘 한국영화계의 치명적 편식증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일단 돌아온 중견 배창호 감독에 대한 기대감의 스포트라이트는 화려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흑수선」에 개막작이란 화환을 씌웠고, 투자자들은 53억원이란 제작비로 지원사격에 나섰다. 게다가 국민배우 안성기, 이정재, 이미연의 ‘드림팀’이 막강한 카리스마로 기선을 제압했다.

1980년대 정서에 21세기 액션과 특수효과의 결합이 이음새 없이 재생될 수 있을까. 일회용 인스턴트같이 경쾌하고 스피디한 요즘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겐 다소 묵지근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한국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에서 “널 다시 만나기 위해 난 꼭 살아 있을 것”이라는 절대적 사랑이 반복적으로 주입된다.

물론 「고래사냥」 「깊고 푸른 밤」 등 80년대 젊은 감성의 대변자였던 ‘배창호표’영화의 보증수표는 여전히 멜로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80년대 젊은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

기진맥진해 있던 손지혜(이미연)가 황석(안성기)이 입에 넣어준 머루를 먹자 벌떡 일어나 “오빠! 바위틈을 뚫고 피어나는 저 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봐”하는 식의 문어체적 대사나 관습적 낭만에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가볍고 말랑말랑한 작품들이 즐비한 충무로의 성찬에서 오랜만에 선 굵은 영화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고맙다. 16일개봉.

◈「머스킷티어」

또 삼총사야?

1910년대부터 자기복제와 변주를 거듭해온 영화 「삼총사」.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삼총사」는 목마른 영화가 끊임없이 두레박을 던져 올리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다.

1948년 진 켈리의 삼총사에서 크리스 오도넬이 나온 93년 작까지. 왕실과 교회를 둘러싼 음모와 협잡, 대의와 명분이 낭만이던 시대의 무용담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의 소재가 될 만하다.

그렇다면 닳고닳은 삼총사를 어떻게 포장할 것인지. 이번 영화의 컨셉은 ‘퓨전 액션’에 있다. 칼날이 부딪치는 삼총사의 활약상을 동양적인 무협 액션으로 재탄생시켰다. 구르는 술통 위에서, 탑으로 올라가는 줄에 매달린 채 공중에서 칼싸움과 무협액션이 현란하게 겹쳐진다. 「황비홍」의 친친치앙이 무술감독을 맡은 이 영화는 수많은 사다리 사이를 건너다니며 「황비홍」의 병법을 한 수 빌려온다.

저스틴 챔버스가 달타냥으로, 「아메리칸 뷰티」의 당돌한 여고생 미나 수바리가 달타냥의 마음을 뺏는 프란세스카로 나오며 카트린 드뇌브, 팀 로스 등 호화캐스팅이 빈약한 상상력을 메운다. 감독은 「레릭」 「엔드 오브 데이즈」의 피터 아이암스가 맡아 감각적 액션만큼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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