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주말이면 김금호씨(57·한림읍 옹포리)네 집에서는 한문을 읽은 아이들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양반자세로 제법 의젓하게 앉아 명심보감을 술술 읽어 내리는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그 또래들과는 사뭇 달라 신선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동네에서 훈장선생님으로 통하는 김씨는 현재 겨우 화장실을 오갈 정도로 몸이 불편하다. 지난 95년 5월에 당한 교통사고로 경추 6·7번이 망가져 전신이 마비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고 이전에는 왕성한 사회활동으로 그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왔던 그에게 자신의 힘으로 몸 하나를 제대로 추스를 수 없다는 현실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2년여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독인 결과 한결 안정을 찾은 김씨가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건 98년 여름방학 때부터.

 “예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세상이 점점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 같은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은퇴 후에 기회가 닿으면 자라는 아이들에게 그런 공부를 가르쳐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몸이 온전치 못하게 된 후에야 실천하게 되는군요”

 현재 김씨에게서 한문공부를 받는 학생은 약 15명 정도. 초등학생에게 동몽선습을, 중·고등학생에게는 명심보감을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곧바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동안 동네 서당에서 배운 한문실력이 김씨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한자 몇 자를 더 알고 모르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선인들의 말씀을 깨닫고 또한 진심으로 그걸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김씨는 하루가 다르게 한자실력이 느는 아이들을 보는 일도 물론 즐거운 일이지만 아이들의 부모들에게서 한자를 배운 이후 참 공손해지고 단정해졌다는 말을 들을 때가 더욱 기쁘다.

 “학생들은 한문을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하지만 그 아이들에게 정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접니다.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즐겁고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그 날까지는 이 일을 계속할 겁니다”

 초등학생이 쓴 한자의 획순을 바로 잡아 주는 김씨의 따뜻한 손길에서 학생들을 향한 애정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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