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리 없는 이가 눈 없는 이의 등에 업혀 길을 건넜다는 이야기가 있다.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주는 건 견고한 철교(鐵橋)가 아니다.
작은예수수녀회 제주분원의 데레사 수녀(J. Teresa·34)와 11명의 (정신)지체장애인들은 그렇게 서로의 나약하지만 강한 다리가 되고 눈이 되어주고 있다.
“저는 장애인으로 태어난 게 무척 행복해요. 부족한 걸 채우려 노력해야 하니까 남들이 못 보는 감각을 더 많이 얻거든요. 남들이 보기에 불편할 뿐이지 내가 원하는 걸 하는 데 한계를 느끼지는 않습니다”
못하는 거라면 100m 달리기를 20초 내에 뛸 수 없다는 것, 남들보다 글씨가 느려서 답답할 뿐이라는 데레사 수녀. 나들이 때면 작은예수회 식구들 사이를 성큼성큼 내지르며 찰칵찰칵 카메라를 들이대는 수녀에게서 뇌병변장애 6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 낙인을 읽어낼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란 주홍글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 데레사 수녀는 ‘무언가 할 수 있어’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고, 또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하느님이 나를 창조하고도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을 것”이라는 데레사 수녀야말로 세상 사람들을 ‘보시니 참 좋았다’. 작은수녀회 식구들과 문예회관 전시실 나들이에서 처음 만나던 날, 데레사 수녀를 한눈에 알아본 건 검은 수도복 때문이 아니었다. 후광처럼 드리워진 수녀의 환한 웃음은 모든 사람과 열렬히 연애하는 표정이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만이 세상을 밝힐 수 있다.
식구들이 전시 관람을 마치자마자 제주의료원에서 있는 심장병 무료검진을 받게 하고 돌아와 저녁식사 후 휴식에 돌입하면 데레사 수녀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수녀라는 것만으로는 장애인 식구들에게 전문적 도움을 줄 수 없어”서 제주관광전문대에서 사회복지학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인 세상의 기준에서는 부족하지만 우리 (장애인)식구들이 갖고 있는 능력은 많아요. 다른 세상에서 사는 방법이 뛰어난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찾아주려면 내가 많이 알아야 해요”
수녀는 어린 시절 병약해서 걸음마도 못했던 딸을 살리기 위해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던 부모의 끔찍한 사랑, 간절한 기도를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어 행복해 한다. 27살, 수도회에 입회하겠다는 딸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서 마지막 한숨처럼 받아낸 것도 그 기도다. ‘우리 딸만 살려주면 하느님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던 그 옛날의 기도가 데레사 수녀를 살렸고, 이제는 더 많은 장애인들에게 빛이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당 사무실에서 일하던 데레사 수녀에게 빛으로 다가온 건 누더기차림의 행려자였다. 한끼 식사가 필요했던 행려자를 사기꾼으로 오해하고 그냥 지나쳤던 수녀. ‘예수도 2000년 전 그런 허름한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내가 진짜 원하는 사람이 올 때 진정 깨어있는 눈이 아니면 어떻게 알아볼 수 있겠냐’는 통렬한 아픔이 데레사 수녀를 이 길로 인도했다.
7년 전, 3년 간 서울 군자동의 작은예수수녀회에서 수련을 마치고 브라질의 양로원을 거쳐 작년8월 제주분원장으로 처음 발 디딘 제주. 데레사 수녀에게 제주는 자연도, 공기도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3개 분원에 2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하나마 함께 하는 곳. 2개가 있어서 1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1개를 반으로 쪼개줄 줄 아는 사람들, 없는 시간을 쪼개 두 배로 늘릴 줄 아는 제주 사람들은 “나뿐만 아니라 주위환경이 함께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는 방법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이다.
장애인과 정상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온전한 세상을 작은수녀회 공동체 밖으로 확대하는 것, 그래서 세상에 장애인이란 말이 사라지고, 그저 사람으로서 족한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데레사 수녀는 한걸음 두걸음 작은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다. 1주일에 한번 이상 장애인 식구들과 극장 및 전시회장을 찾으며 세상 사람들에게 교신을 보내는 것, 그것은 장애인 식구들이 세상 밖으로 걸음마를 시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사람들이 장애인 친구들의 세계와 만나는 일이다.
지금은 공동체 내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에게 예절교육을 시켜 찻집을 운영하는 게 데레사 수녀의 3개년 계획이다. 떡볶이 가게 아르바이트가 최고의 꿈인 식구가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관광도시 제주, 장애인과 일반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열리는 날. 그 날은 반쪽 짜리 두 세상이 하나가 되는 새날이 될 것이다.<글=김은진 기자·사진=김영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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