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랫동안 꺼내들지 않았던 사진첩을 여는 순간, 사진을 찍었던 바로 그 시절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이 쌓아올린 더께가 두터우면 두터울수록 추억으로의 귀향은 더디기 마련. ‘이게 언제 적 사진이었지’ 또는 ‘사진 속의 인물이 내가 맞나’라는 짧은 의문을 몇 번 통과하고 나서도 온전히 복원되지 않는 추억들도 있다. 이 사진 속의 주인공인 유남규씨(47)도 그런 경우였다. 유씨는 사진을 이리저리 뜯어보고 나서야 30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희미한 기억들을 말해줄 수 있었다.
적어도 유씨와 같은 세대라면 사진 속의 리어카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이 모두 쥐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터이고, 예전에 한 달에 한번 있었던 ‘쥐 잡는 날’도 기억할 것이다.
유씨가 20대였던 70년대 만해도 어찌나 많았던지 잡아도잡아도 끝이 보이지 않던 쥐의 엄청난 숫자와 생명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던 시절이었다.
당시 4H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유씨는 “마을에 사이렌이 울리면 동료·선배들과 함께 리어카를 끌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쥐를 수거했는데 쥐를 잡기 위해서 쥐덫, 쥐코, 고양이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됐다”며 “어떤 사람들은 죽은 쥐를 손으로 잡는 걸 꺼려 호미를 이용하거나 발로 툭툭 차서 가져오기도 했다. 지금 이 정도의 쥐를 잡으려면 아마 1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며 웃었다.
쥐약 때문에 쥐 잡으라고 모셔온(?) 고양이나 멍멍이가 죄 없이 세상을 마감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동사무소 등에서 나눠준 쥐약은 밥에 섞어 쥐가 잘 다니는 곳에 두었는데, 쥐보다 고양이나 개가 먼저 먹고 해롱해롱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쥐 잡는 날을 앞두고 개나 고양이를 잘 묶어두라는 안내방송은 거의 필수였다.
그 때 그 시절 있었던 ‘쥐와의 전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진행됐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쥐를 잡아오라는 숙제를 내고 그 증거로 학생들이 쥐꼬리를 제출해야 할 정도였다.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학생들은 오징어 다리를 땅바닥에 마구 비비는 편법(?)을 동원해 제출하는 해프닝도 많았다.
오랜만에 낡은 사진첩을 꺼내들고 아들에게 예전의 일들을 설명해주는 유씨는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사람 사는 재미는 더 있었다”며 요즘의 각박한 현실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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