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잠녀'6부-34. 해녀사(史)

재일1세대 홍석랑 할머니 등 '산증인 채록' 더뎌
근·현대사 질곡 속 '제주 정체성' 평가 서둘러야
언젠가 어느 학자가 경고했다. '잠녀 하나가 사라지면 제주도의 박물관 하나가 사라지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고. 그냥 해본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일찍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넜던 노잠녀들이 하나 둘 세월의 뒤안길로 떠나고 있다. 제주에 살고 있는 잠녀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바다를 건넌 잠녀들의 이야기는 아직 빈 칸을 채우지 못했다.
'조선적'할머니의 삶
'광복 70주년'으로 8월이 뜨겁다. 근.현대사의 질곡 속에 제주를 견인해온 잠녀들에 대한 관심은 차갑다. 제주에서 삶을 지키겠다는 의지에서부터 일제 무력 수탈에 항거(해녀항일운동)하고 적극적인 해외 개척(바깥물질)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제주 잠녀는 '광복 70주년'이란 기준으로 볼 때 '민족 자긍'의 주체로 꼽힌다. 하지만 아직 제주 안에서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외형'을 지키는데 그치고 있다.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기준으로 하면 잠녀를 통해 제주 역사를 훑고도 남는다. 정체성의 상징이란 얘기다.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숙명처럼 바다를 배웠고 힘들게 물질을 해 가정을 일궜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사정이 전부일 리 없다.
일제 강점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섬을 떠났던 잠녀들이 아직 살아있고, 제주 4·3사건(1948년 4월), 한국전쟁(1950년 6월)과 휴전(1953년 7월), 그 뒤로 이어지는 5·16 군사정변(1961년 5월) 등 사회 혼란 속에서도 바다를, 삶을 유지했다.
그 기억이 사라지고 있다. 지난 5월 우리나라 분단의 역사를 온몸에 각인했던 노잠녀가 세상을 떴다. 장편 다큐 '해녀 양씨'의 주인공 양의헌 할머니다. 1930년대 일본 물질을 했던 할머니는 제주에서 해방을 맞았다. 하지만 4.3의 틈바구니에서 어린 딸을 떼어놓고 밀항을 선택했다. 조총련계 남편을 만난 할머니는 1960년대 세 아들을 북으로 보냈다. 평생 '조선적' 무국적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언젠가 생이별한 자식들에게 직접 지은 밥 한 술 떠먹이고 팠던 어머니의 소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남쪽에 남겨뒀던 딸은 그나마 2002년 무려 53년 만의 귀향길에 잠시 얼굴이라도 봤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만날까 했던 북쪽에 간 아들들은 다시 품에 안지 못하고 세상사만큼 무거웠던 눈꺼풀을 내려 놓았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에서 태어났지만 오사카 이쿠노구를 주소로 둔 양 할머니의 사연은 필름과 그녀에게 관심을 뒀던 여러 학자들의 기록으로 남았다. 1960년대 재일조선인 연구자인 신기수씨가 40대의 그녀를 영상에 담으려다 미완으로 남긴 것을 일본인 마사키 하라무라 감독이 발견, 채웠다. 2004년 일본 관객들 앞에 개봉된 이 작품은 그보다 몇 발 늦게 제주에서 상영이 됐다.
치바의 제주출신 노잠녀



홍 할머니는 국민 징용령에 의한 '모집'형식으로 일본 바다에 몸을 던졌다. 군수산업에 동원된 징용물질은 홍 할머니의 삶을 바꿨다. 39년 만에 고향 땅을 밟았지만 결국 치바로 돌아왔고, 그렇게 '재일1세대'의 편린으로 남았다.
청진 그리고 중국 바다를 노닐다
일제강점기 강제 진용으로 삶을 바꾼 또 한명의 노잠녀의 주소는 중국 길림성 장춘시다. 김순덕 할머니 역시 제주와 바깥물질의 기억을 품고 있다. 또래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저절로 물질을 배웠고 징집을 피해 청진행 잠녀 모집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김 할머니는 북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청진에서 다시 중국으로 옮겨간 뒤 '조선'국적에 이어 '중국'국적을 얻었다. '청진 물질도 제주와 비슷했다'는 내용은 김 할머니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 5~6명이 짝을 이뤄 작업을 했던 것이며 세소라.세나루 했던 바다 이름이며, 1960년대 오사카 지역 제주출신 잠녀들과 교류했던 내용도 김 할머니의 기억으로 찾아냈다. 처음 물질을 할 때 썼던, 환갑은 족히 넘긴 '족은 눈'까지 소중히 간직했다. 유물과 유산까지 김 할머니 자체가 하나의 박물관인 셈이다. 아쉽게도 그들의 기억은 아직 '기억'인 상태로 남아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가'자체가 민족 자긍의 상징이자 제주 정체성이다. 해녀문화목록에 꼭 필요한 항목이기도 하다.
| 제일여성들의 삶·정체성 밝히다 |
| 바다를 건넌 제주 해녀들 재일한국인 2세들에게 철이 들면서 정체성 혼란에 흔들렸던 기억은 '성장통'이나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둘러싼 왜곡된 역사와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경계인'이라는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받으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분명히 할 '무엇'을 찾는데 몰두해왔다. 그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잠녀'다. 도쿄에서 태어난 편집인 김 영(56).양징자(58)가 공동으로 펴낸 <바다를 건넌 조선인 해녀>는 1982년 여름 요코하마에 살고 있는 고옥순 해녀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됐다. 재일한국인 1세 중 물질을 하는 여성들의 삶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남겼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 묻고, 또 그를 통해 찾고 '아주 가는 실을 조금씩 끌어 모으는 듯한' 5년의 여정을 통해 그들은 보소반도 가츠우라와 아마츠, 후토미, 와다우라, 지쿠라, 호타, 가나야, 다케오카 등 8개 지역에서 바다를 누비는 28명의 잠녀를 만났다. 잠녀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던 이들이지만 그들이 듣고 정리한 기록은 일본 출가 물질을 나섰던 제주 여성들에 대한 둘도 없는 정보가 됐다. |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