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니와 준하」

 사랑의 포로가 아니라 기억의 포로가 되는 것. 그것이 첫사랑의 신화다. 한국영화 「와니와 준하」가 발랄한 사랑의 찬가 대신, 어두운 옛사랑의 그림자를 좇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연인인 시나리오 작가 준하(주진모)와 동거 중이지만 유학 떠난 첫사랑 영민(조승우)을 지우지 못하는 와니(김희선). 애니메이션의 동화(動畵)를 그리는 여주인공 와니와 시나리오 작가라는 영화 속 인물들의 직업은 트렌디 드라마의 소재지만 와니에게 하얀 환자복 같은 표정을 덧씌워 ‘순정영화’를 만들어냈다.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과 서정적인 실사 화면이 번갈아 가며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조명한다. 낡은 자전거에 새겨진 이니셜, 화해를 위한 CD 속 플래시 애니메이션 등 디테일에 방심하지 않는 관객만이 방치된 스토리에 지루해하지 않을 수 있다. 흑백사진처럼 주인공의 얼굴보다 아기자기한 세부와 소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게 이 영화보기의 즐거움이다.

 극중 애니메이션은 와니가 준하에게서 느끼는 데자뷔(기시감·이미 어디선가 봤었다는 느낌)를 통해 다시 한번 첫사랑의 신화를 전복시킨다. 어린 시절 그에게 선물을 주고 간 애니메이션 속 소년의 얼굴 위에 준하가 겹쳐지면서 와니를 현재의 사랑으로 되돌아서게 만드는 것도 이런 순정이다.

 치밀한 편집과 병치되는 심리적 복선들은 멜로 드라마의 상투적인 오버액션을 절제하려는 이 영화의 미덕이다. 「춘향뎐」의 이도령 조승우는 정제되면서도 묘한 매력의 영민을 연기함으로써 가장 호평을 받았다.

 독립영화집단 영화제작소 청년 출신인 김용균 감독의 데뷔작. 24일 개봉.

◈「키스 오브 드래곤」

 이연걸의, 이연걸을 위한, 이연걸에 의한 영화. 서구인의 동양에 대한 환상과 동양인의 영웅 이미지에 대한 보상심리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영화가 「키스 오브 드래곤」이다.

 흥행요소들의 혼성 교배에 천재적인 명장 뤽 베송 감독이 이번엔 「황비홍」의 이연걸을 띄웠다. 할리우드로 화려하게 입성한 성룡이 있지만, 성룡의 코믹 이미지로 동양적 무협 액션의 우아한 동선을 그려내기는 역부족. 이소룡식 쿵푸의 대를 이을 후계자로는 이연걸 만한 적임자가 없다.

 그러나 이연걸을 초청해 놓고도 할리우드는 그간 마땅한 대접을 하지 못했다. 「황비홍」에서 단 한번의 주먹다짐 없이 상대를 유연하게 제압하던 이연걸이 사이코 형사의 작살에 찔려 죽는 모습(「리쎌 웨폰4」)에 만족할 관객은 없다.

 할리우드를 비난하면서 유사 할리우드 전략으로 맞서는 프랑스 영화계의 프로젝트는 흙 속에 묻힌 진주를 끄집어냈다. 

 이소룡의 전설을 잇는 이 새로운 영웅 특유의 유연한 무예 솜씨는 자체가 영화의 특수효과로 업그레이드된다. 이를 위해 액션영화 「키스 오브 드래곤」은 사건을 풀지 않고 계속 눈이 번쩍 뜨이게 엮어나가기만 한다.

 중국 최고의 특수경찰 류(이연걸)는 프랑스 경찰과의 공조수사를 위해 파리로 온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프랑스를 무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중국의 마약왕을 체포하라는 것.

 그러나 잔인하고 악독한 프랑스 경찰 리샤르의 음모에 맞서 이연걸은 스피디한 무술 액션으로 부패한 경찰 조직을 평정한다.

 뻔한 결론이지만 동양 관객들의 쾌감은 다른 데서 온다. 기존의 흑백 구도로 나뉘었던 동양인과 서양인의 역할 분담에 이연걸은 초인적인 발차기를 날린다. 프랑스 악당들을 제압하는 이연걸의 동양식 액션은 관객들의 그간 할리우드로부터의 피해 보상심리에 불을 댕길 듯하다.

 「니키타」 이후 「레옹」「제5원소」등 상업성으로 충만한 프랑스 문제작들을 만들어낸 뤽 베송 감독은 이번에 제작과 시나리오를 맡아 이연걸과 동서양 최고 콤비 프로젝트를 실현한다.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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