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기획 '제주잠녀'6부-32.제주해녀문화목록 직업의식

'무엇을 어떻게' 고민 진행…문화·방향 설정 더뎌
생업 파생…경제·문화적 측면 균형감각 등 주문
경력단절·육아병행·현장 복귀 등 흐름 파악해야
천직을 문화로 승화
'제주 잠녀'는 지역 정체성의 상징으로 끊임없는 관심을 받고 있다. 관심의 역사는 사실 그리 오래지 않다. 굳이 시작점을 찾자면 1986년.1988년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행사를 치르면서 다른 지역에는 없는 '특별함'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관광 산업과 연계로 치우치던 관심은 2007년 해녀 전승.보존 조례 제정을 전후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주문으로 이어졌다.
일단 '관심'은 생겼지만 후속 작업은 더뎠다. '무엇을 어떻게'할 것인지의 공론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잠녀는 알고 있지만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고령 잠녀들이 하나둘 바다를 떠나면서 어느 순간 '일정 수준의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에 매달리며 '문화'에 대한 설정과 방향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제주잠녀에 있어 가장 인색한 것 중 하나가 '직업'에 대한 평가다. '먹고 살려고 한 일'이란 기준을 유네스코는 '생업에서 파생된 문화(민속지식)'으로 읽는다. 결국 지역에서부터 경제적 측면(직업)과 문화적 측면의 균형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잠녀'는 말 그대로 천직이다. 살기 위해서 전적으로 바다를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질을 한다'는 것은 큰 능력이었다. 직접적으로 물질을 가르치는 과정은 없었지만 할머니나 어머니, 상군으로 대표되는 선배 잠녀들로부터 바다와 친숙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바다 속에서 해산물을 구별하고 건져 올리는 요령을 배운 후에야 비로소 '잠녀'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하군에서 중군, 상군에 이르기까지 능력에 따라 공동체 내 위치가 달라진다. 기술을 익힌 뒤 능력에 따라 '승격'을 한다는 점은 잠녀를 '직업군'으로 이해해야 하는 기준이 된다.
물질을 할 줄 안다 하더라도 '어촌계' 가입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작업을 허락받았다. 지금은 잠녀 수가 계속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런 과정들은 잠녀.잠녀문화를 존속하는 바탕이 됐다.
체화된 지식의 응집

바깥물질 역시 처음 일제 수탈에 의해 생존권을 위협받는 과정에서 활발해졌지만 이후 과정들은 '직업'적 성격이 강하다. 1900년대 초반 일본에 건너간 제주잠녀들은 그 지역 물질 기법을 바꿀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단순한 노동력 조달 차원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심지어 이런 제주 잠녀의 특수성을 감안한 '모집책'을 통한 바깥물질도 이뤄졌다. 국내.외 바깥물질 과정에서 직접 기술을 전파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고령화 등 사회 문제적 접근이 시작되기 전 제주 잠녀는 말 그대로 직업이었다. 1960년대에는 '지역 산업'을 견인하는 '직업군'으로 평가받았고, 1970년 초반까지 국내 중앙지들이 지역 경제 구조 속 제주 잠녀들의 역할을 조명하는 기획(동아일보 1970년 '땀 흘리는 한국인' 등)을 연재할 정도였다.
이후 '민속경영학'(전경일, 2011년 「잠녀처럼 경영하라-바다의 경영자 잠녀에게 배우는 48가지 경영 지혜」)이란 용어가 등장하는 과정에서도 큰 저항은 없었다. 오히려 바다 밭을 일궈 관리하고 기술을 전수하는 '현장 경영'에서부터 체화된 지식과 경험을 통해 바다를 살피고 능력에 맞춰 바다를 선택하는 '효율경영'까지 완성하는 접근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나라 최초 전문직 여성
이들 과정에서 보면 '전문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엿보인다. 작업 환경에 대한 관리는 물론이고 다음 작업을 위한 채비 역시 같은 공간에서 이뤄진다. 요즘 워킹맘들이 겪는 고민을 한 세기는 먼저 했다. 결혼을 하면서 계속 물질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아이를 낳은 뒤 '복귀'문제는 물론 육아와 일의 병행에 있어 직접 직장(바다)에 데리고 나가거나 아이를 돌보는 이(아기업개)를 별도로 두고 작업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바깥물질 과정에서 친척이나 이웃의 나이어린 여자아이를 육아 방편으로 데리고 갔다는 증언도 여럿 확인된다. '경력단절'과 '복귀'의 개념 역시 잠녀들에 있어서는 이미 적용됐다고 볼 수 있다. 결혼 등으로 물질 기회를 잃기도 하고 다시 아예 바다를 떠나 다른 일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물질을 했다거나 시어머니의 자격을 물려받아 물질을 하게 되는 등의 과정은 당시 직업을 가진 여성들의 일반적 행태와는 차이가 있다. 아이만 키워도 세상에서 가장 강해져야 하는 데 누구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바다'라는 환경을 개척하고 눈이나 빗창 같은 도구를 각자의 특성에 맞춰 개선하는 등의 과정은 '전문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세계가 주목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사라져가는 독특한 해양문화'라는 틀 아래 강인하게 자신의 삶을 경영하고 이를 계승하는 것을 높게 평가한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도 최근 제주잠녀를 '우리나라 최초 직업여성'이라고 보고 가부장사회 속에서도 독립성을 지니고 전문직 여성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고 미 기자

다양해지는 제주해녀 홍보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잠녀문화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 등재 작업의 일환으로 '제주 해녀'인포그래픽을 제작, 공개했다. 잠녀 문화 전승.보전 계획을 수립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조례가 만들어진지 8년이나 지난 뒤 나온 결과물 중 하나다.
이미 올해 초 서울여자대학교 콘텐츠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잠녀들을 이해하는 만큼 그네들의 바다가 편안해진다는 내용의 '바다의 어멍, 제주해녀'라는 인포그래픽이 유튜브에 소개됐던 것을 감안하면 조금 아쉽다.
제주도가 유네스코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부산에서 초등학생과 노인들이 힘을 합쳐 '해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부산 해운대구, 기장군, 남구, 수영구, 동구 지역 문화전문인력 기획사업인 '바다 그리고 해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는 19일 부산 동구 부산역과 남구 이기대에서 펼쳐지며 동일중앙초등학교 학생 30명과 해운대구 어진샘노인종합복지관 15명이 참여하는 플래시몹을 펼친다.
유네스코 등재에 대한 국내 관심을 유도한다는 것이 기획 의도다.
고 미 기자
popm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