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에 거리문화가 있는가.
거리 문화는 밑바닥 문화다. 예술이 무대 위의 정형화된 ‘보여짐’이라면 거리예술은 눈높이를 낮춘 관객과의 ‘소통문화’다. 거대한 문화의 격랑이 휩쓸고 지나간 자그마한 소용돌이다. 문화의 황무지 제주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밑으로부터의 현실 문화’다.
이쯤 돼서 다시, 제주에 거리문화가 있는가. 2001년 겨울, 사람들은 이제 주말 어스름 해질녘의 제주시청 거리를 생각해낸다. 거리 위 투닥투닥 셋팅에 열중하는 작업복 차림의 사람들을, 이윽고 하얀 칠을 한 행위예술가들의 자유와 몸부림을, 시민들에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의 사각거리는 목판소리를, 생경스럽지 않은 통기타의 음률과 리듬을.
바로 ‘테러 J’라고 부르는 예술인들을.
#한 예술가의 목마름에서 시작
제주의 문화를 테러한다는 뜻의 ‘테러 J(Terror Jeju)’. 그들이 매주 토·일 오후6시 제주시청 어울림 마당에서 시민들에게 무차별 문화의 융단 폭격테러를 가한지 8개월이 지났다.
그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보여지기 위한 제주문화의 현실’에 대한 개탄 때문이었다.
“‘외면당하고, 가둬진’ 전시관 속의 예술과 관객 외면을 받는 수억원 짜리 자치단체의 축제는 진정한 문화가 아니다”. 테러 J를 만들어낸 퍼포머이자 미술가인 오경헌씨(31)는 제주의 가난한 문화를 꼬집는다.
대학시절부터 칠성로와 시청, 제주대 캠퍼스를 돌며 퍼포먼스 팀을 만들어 공연을 해왔던 오씨는 당시엔 생소한 퍼포먼스라는 장르때문에 관객들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제주에 몽마르뜨 언덕은 아직 이를 것 같았다. 결국 이어지는 퍼포먼스 팀의 해체. 어느 거리에 가든 그 곳은 자신의 무대가 되었지만 관객들의 공감대 없이 그저 행위에만 몰입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씨가 퍼포먼스를 포기하려 할 때 이미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후배 퍼포머인 이경준씨(27)가 찾아와 ‘거리로 나가자’고 이끌었고 오씨가 만든 웹 잡지인 ‘제주문화잡지’를 통해 문화 동호인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로 나와 그들만의 무대와 스탭을 갖고 문화라는 씨앗을 뿌리기 시작한 지 3년. 제주시청 거리공연을 비롯해 서귀포시 천지연공연, 탑동공연, 한국백혈병 소아암 어린이돕기위한 새생명 국토대장정 공연, 전국순회 분교 공연 등에 걸친 그동안의 공연은 거리문화라는 새로운 생명으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 봇짐을 풀고 기나긴 정기공연에 나섰다.
공연 주제도 제주의 일상을 적용했다. 예술이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인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제주의 바다 이미지를 담은 ‘바당물에 담근 수박’과 관객들에게 금붕어 이름을 짓게 했던 ‘금붕어 2마리의 외출’ 등을 보면서 거리 위의 민초들은 한바탕 웃고, 몰입하고, 호흡했다. 길을 가던 80대 노인과 아기를 등에 업은 아줌마, 사탕을 입에 문 코흘리개 아이들 모두 그곳 거리 위에 서 있었다.
#밥 한끼 안 먹는 불특정 다수들
대표 오경헌씨와 전문 퍼포머 몇몇을 제외하고는 테러 J를 이끄는 대부분이 비공인예술인들이다. 예전 대학가요제에 출전했던 학교 선생님,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원 강사, 술집에서 노래하는 라이브 가수, 대학생 동아리 연합, 힙합에 미친 10대들, 바텐더 등등.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회원수를 물어보니 테러 J의 대답은 뜻밖에 “모른다”. 고정 멤버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예술인들이 거리공연에 참석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스탭들이 매주 유동적으로 예술인들을 섭외하기 때문에 얼굴도 공연당일 아는 경우가 많아요. 회원들 대부분이 자신의 생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본업에 충실하도록 부담 주고 싶지도 않고요. 우리가 선택한 것은 우리 세력을 견고히 하는 회원단결이 아니라 거리문화를 살리자는 공동의지입니다”
밥 한끼 먹는 회원모임이 없다보니 운영비용은 고작 셋팅 작업에 드는 2만원이 전부. 공연 후 시청 자판기에서 마시는 200원짜리 커피 한잔이 이들의 뒤풀이가 된다.
제주의 거리는 이제 거리가 아니다. 쓰레기 문제를 외치는 시민단체 캠페인에서부터 중·고딩의 만화주인공 복장의 코스튬플레이 경연대회까지 아우르는 ‘토해냄’의 광장으로 허물을 벗고 있다.
문화의 꽃을 피우는 테러 J는 그 중에서도 인간에게 인간다움을 호소하는 가장 인간적인 토해냄일 게다.
“아름다운 섬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야 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문화가 필요합니다”(테러J의 ‘제주문화잡지’에서)<글=김미형·사진=강정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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