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의 기념촬영 사진들은 아련한 옛 추억과 정겨운 사연들을 들려준다. 친구들과 함께 한 학창시절은 옛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지만 그 사진들에 얼룩져 있는 시간의 시시콜콜한 의미들을 음미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1976년 4월 제6회 도일주 역전마라톤 대회에서 3위를 한 성산수고(현 해양관광고) 육상팀의 기념촬영 사진이다. 제주시 일도2동에 사는 임종일씨(45·자영업·오른쪽 두번째). 지금은 두 아들을 둔 40대 중년이 됐지만 20여년 전 까까머리를 한 학생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5㎞지점을 넘으면서 힘이 부쳤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5회 도일주 대회부터 참가한 임씨는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럴 것이 대회입상을 하면 수업료 전액을 면제해 준다는 학교측의 설명에 선수들 모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당시 성산수고 육상팀이 3위에 입상했다고 하자 주민들은 바쁜 일손을 멈춘 채 노인회·부녀회 단위로 환영행사를 했다. 어린이들도 형과 오빠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임씨는 “대회를 앞두면 살을 에이는 날씨 속에서도 혹독한 합숙훈련을 했다”면서 “당시 육상팀 생활은 학창시절의 한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역전마라톤 대회 우승을 하려면 성장 가능성이 풍부한 선수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성산수고 같은 농촌 학교에서 눈에 확 띄는 선수를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임씨도 어릴적부터 육상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학교 체육대회에서 육상지도교사의 눈에 띠어 대회를 앞둬 육상팀에 가입했다고 한다.

 도일주 역전마라톤이 창설된 것은 지난 71년 4월. 일주도로 완전포장을 기념해 시작됐다. 경기는 일주도로 181㎞코스를 14개 소구간으로 나눠 펼쳤다. 소구간은 읍·면사무소 소재지역과 구좌읍 김녕리를 포함했다. 그러나 세화∼조천 사이가 장거리 구간이어서 김녕을 기점으로 2개 소구간으로 나눴다. 이후 77년 제7회 대회부터는 도일주 역전경주대회로 명칭이 변경됐고, 고등부 육상팀이 줄어들면서 선수 수급이 어려워져 지난 97년 제26회 대회를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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