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고」
 영화 「화산고」는 12월 대목 영화시장에서 중요한 분수령으로 주목된다. 「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까지 분출하는 한국 조폭영화세를 이어갈지, 아니면 다음주 개봉하는 핵태풍 「해리 포터」에 밀려 휴화산으로 주춤할지. 한편 줄줄이 대기중인 「로스트 메모리즈」「성냥팔이 소녀의 재림」등 한국 SF대작들의 신지형도를 선도하리란 기대도 많다. 

 무림의 비서(秘書)와 최고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대환란의 무협 세계. 이 강호의 무사들은 ‘화산고’라는 고등학교로 무대를 옮겨 전교생의 ‘짱’자리를 다툰다. 

 분필이 선생과 제자 사이를 미사일처럼 날아다니고, 장력으로 상대방을 허공에 띄우지를 않나 공중제비를 돌며 대나무 숲을 나는 일도 예사. 쏟아지는 폭우를 정지시켜 물방울로 만들어 상대를 제압하는 등의 장면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실사 액션이라는 점. 무엇보다 할리우드가 아니라 100% 충무로가 꿈의 공장을 실현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성과다.

 「매트릭스」「와호장룡」의 액션 이미지가 떠오르는 영화. 그러나 학원 무협이라는 특이한 메뉴를 내놓는 「화산고」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무협극에서 차용된 캐릭터들의 대칭, 그리고 무너진 교단을 비유하는 사제간의 대결 구도다.

 경수(장 혁)가 화산고로 전학오기 전 여덟 번이나 번번이 나타나 경수를 퇴학시킨 악연의 적수로 등장하는 수학선생 마방진(허준호). 이는 강호와 교단에 대한 비뚤어진 풍자로 보인다. 학생들의 난처한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교사들이 일시적으로 눈동자가 비뚤어지게 하는 기술을 ‘사팔신공’으로, 담배 피는 아이들의 기도를 막아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공포의 사파무공은 음악선생이 담배 피는 학생 색출을 위해 사용하는 무공이라고 자막설명까지 해준다. 

 블록버스터답게 무게를 잡기보다는 재기 ‘반란’한 아이디어들을 현란한 CG속에 춤추게 한다. 주연들의 검은 교복에서 검을 휘두르는 협객의 비장함과 카리스마가 나오는 것은 순전히 컴퓨터그래픽(CG)의 성과다.

 순제작비 48억원, 제작기간 17개월 등의 스케일 못지 않게 순수 국내 기술진이 만들어낸 와이어 액션에 눈이 즐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하다. 한국 영화사 최초로 영화 필름의 데이터를 100% 디지털로 재입력, 한 프레임씩 일일이 인물의 피부 질감까지 색보정한 뒤 필름으로 재출력했다.

 “학교에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어요?”라는 소요선(공효진)의 말처럼 교육현장에 대한 질문이 만화적 액션 속에 빗발친다. 그러나 묵직한 이야기는 쉴 새 없는 공중 발차기, 벽타고 뛰기 등 고난도 무술시위 속에서 산화하고 말았다.

 액션의 강약 조절엔 내공이 다소 부족했지만 진일보한 한국 영화 테크놀로지의 성찬을 즐기는 기분도 나쁘진 않다.

 「박봉곤 가출사건」「키스할까요」의 김태균 감독 작품.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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