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미의 청소년 인문학 콘서트(49) 로사 조든 「염소가 사라진 길」

작은 우연에 풀린 의심과 경계
함께 하며 '소통과 성장' 선물
편견은 행복 기회 놓치게 해
▲모든 갈등의 근원 '소통 부재'
학생들에게서 듣는 어른들과의 갈등 문제 1위는 '소통이 안된다' 는 것이다. 소통이 안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라고 하니, "어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해요"라는 대답이다.
마치 장자의 「내편」에 나오는 '바다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노나라 임금이 바다새를 종묘로 불러 맛있는 술과 안주를 대접했으나 바다새는 굶어죽고 말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바다새가 좋아하는 것은 술과 안주가 아닐진대 임금은 자기중심적으로 새에게 술과 안주를 접대한 것이 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이처럼 소통의 문제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더 나아가서는 전세계적인 갈등의 주요인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인종간 갈등, 종교간 갈등, 이념간 갈등, 계층간 갈등 등 수많은 갈등은 다름이 존중되지 않고 편견과 편협한 시각으로 특정 대상, 인종, 국가를 혐오하거나 소외시키는데서 생기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로사 조든의 「염소가 사라진 길」은 이런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소통으로 풀어나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청소년 문학 작품이다. 이 작품 안에는 인종간, 세대간, 이웃간, 개인간의 갈등과 소통의 해법들을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염소 덕분에 친구가 된 두 가족
케이트네는 엄마 혼자서 농장일을 하면서 세 아이를 키우며 가난하게 살고 있는 집이다. 주택융자금을 갚느라 빠듯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케이트 엄마는 새학기가 되어도 아이들에게 새 옷이나 학용품을 사주지 못한다.
케이트는 몸에 딱 달라붙은 옷과 낡은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간다. 이런 차림새를 친구들은 놀리고, 케이트는 아이들의 시선을 피해 화장실로, 도서관으로 숨는다. 저스틴은 야구를 무척 좋아하지만 어려운 살림에 야구부에 들어가서 운동을 하겠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격은 소심해지고 짜증이 늘며, 무기력에 빠진다.
그런데 어느날, 케이트네가 키우던 염소 슈거가 집을 나갔다. 집을 나간 슈거를 따라 가다보니 이웃인 윌슨씨네 집에 도착하게 된다. 윌슨씨네는 흑인가족이며, 가까이 사는 이웃이지만 서로 왕래가 없었다. 엄마는 아이들에게 그들 가족과 가까이 하지 말라고 일러준 집이다. 더군다나 윌슨씨 딸인 루비가 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이 왠지 불안하고 불쾌감까지 느끼던 터였다.
윌슨씨 딸 루비는 불쑥 찾아온 케이트네가 못마땅하다. '백인쓰레기'라고 노골적으로 경멸하기도 한다. 케이트 엄마처럼 그들 내면 안에도 백인에 대한 경멸감이 자리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아이들은 서로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게 되고, 특히 부커가 저스틴에게 야구를 가르쳐줌으로써 무기력에 빠진 저스틴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부커는 훌륭한 야구선수였으나 사고로 장애를 안게 되었지만 성격이 밝고 유능한 야구코치였다.
저마다 외로움과 고달픔을 느끼며 살고 있으면서도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하고 알 수 없는 편견으로 서로를 멀리했던 이들 두 가족은 염소 슈가 덕분에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이다.
급기야는 루비와 케이트의 초콜릿 사업을 추진하는 등 자신들의 꿈을 위해, 어려운 살림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머리를 맞대어 일을 벌리기도 한다. 결국은 서로의 뜻이 맞지 않아 초콜릿 사업은 깨지고 말지만 그 사이 서로는 '소통과 성장'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얻게 된다.
또한 그 무엇보다 가장 멋진 선물은 염소 슈가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염소 슈거는 아빠 빌리와 엄마 슈거를 닮은 세 마리 새끼 염소를 낳는다. 놀랍게도 털빛이 하얀색, 검은색, 그리고 중간색인 갈색이다. 이처럼 새끼 염소들의 다양한 색깔은 이 작품의 주제를 잘 말해주는 중요한 포인트라 여겨진다.
▲존중과 인정에서 '행복' 찾아온다
한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다른 개별자들의 집단이다. 나이, 성별, 외모, 피부색, 직업, 성격, 부의 정도 등.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가치만이 우월하다거나 올바르다는 편견이 주는 폭력이다. 시선의 폭력, 그것은 일반적으로 편견이라고 말하는데 편견이야말로 소통을 막는 장벽이라 할 수 있다. 편견과 오해는 벽을 만들고 서로 나눌 수 있는 마음과 생각을 닫아버림으로써 외로움, 소외감, 멸시감 등 부정적인 감정들에 휩싸이게 하고 결국은 공동체의 온기를 앗아가버리게도 한다.
「염소가 사라진 길」에서는 염소가 집을 나가는 사건으로 인해 왕래가 없었던 두 가족이 만나게 되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들 덕분에 소통의 길이 열리게 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스레 가졌던 오해와 편견 때문에 따뜻한 온정을 느끼며 조금은 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버렸던 것이다.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한다면, 행복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너와 나의 존재를 서로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에서 맛보게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을 열면서 시작했던 청소년들의 하소연을 다시 떠올려본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해요". 어른들은 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에게 권하는 것인지, 그 내면에는 어떤 편견과 자기중심성이 있는 것인지 잘 따져볼 일이다. 제주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
■ 작가 소개
글쓴이 : 로사 조든
미국 UCLA와 멕시코 과나후아토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다.
'어스웨이스 재단(Earthways Foundaton)'의 사회 정의 프로그램 이사이자 '에콰도르 정글 살쾡이 보호를 위한 열대우림보호구역 단체'의 설립자다.
남부 플로리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현재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에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보터니 만으로부터 멀리」 「마지막 야생」 「사이클링 쿠바」 등이 있다. 「염소가 사라진 길」은 영화 '가장 달콤한 선물'(The Sweetest Gift)로도 제작돼 여러 상을 받았다.
■ 작품 속 책갈피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친구가 되기 위해 그 사람과 꼭 비슷해질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잊지마. 중요한 것은 몸에 무엇을 걸쳤느냐가 아니라 몸 자체야. 건강하고 튼튼한 몸만큼 여자를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건 없어."
"이곳보다 더 나은 어딘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마. 하지만 진실은, 네가 스스로 의미를 두지 않는 한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염소가 사라진 길」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