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출신 고양금 작가

지난해 첫 전시 후 해녀 어머니 테마 사진전 꾸준
남편 외조도 한 몫…'숨비소리' 의미 등 공감 유도
등이 슬퍼 보일 때가 있다. 늘 마주하던 얼굴에서 눈물 자국을 만나는 느낌이다. 어느 순간 낮아진 어깨 너머 옅은 신음에 덜컹하고 가슴이 무너지고 마는 사정을 너무 늦게 알았다 애 태워 본 사람은 안다.
우도 출신 고양금 작가(여·43)의 흑백 사진이 쏟아내는 얘기다. 아직 '작가'라는 명함이 어색한 만큼 '어머니'를 앵글에 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진 공부를 하겠다고 일본행을 결심한 딸을 묵묵히 응원했던 어머니는 평생을 바다에 의지한 해녀다. 아니 해녀였다. 2003년 사고로 물질을 그만두고 해초 작업 같은 갯일을 하지 않으면 밭에서 몸을 움직인 말 그대로 '제주 어멍'이다.
고작가의 사진은 해녀였던 어머니의 역사다. 태어나 처음 본 모습처럼 언제나 '해녀'였던 어머니는 1회용 수중 카메라 속에 남아있다. 이후는 자식·손주 일에 울고 웃는 할머니이자 가족의 정신적 지주로 사각 프레임 속 주인공이 됐다.
고 작가는 "그 때는 미처 몰랐지만 매번 영정사진을 찍는 느낌 이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와 같이 물질을 하는 언니가 누군가 사고가 났다는 말에 덜컥 물숨을 들이켰던 것처럼 고 작가는 '찰칵'하는 셔터 소리에서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었다.
그런 고 작가가 꺼내놓은 '해녀'는 날카롭게 찢어지는 숨비소리가 고단한 바다 작업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무사함을 확인시켜주는 신호였다는 것을 사실을 담백하게 풀어낸다.
어쩌면 고 작가 혼자의 기록으로 남았을지 모를 사진들은 남편 김전암씨(42)의 도움으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해 우도에 처음 생긴 우영팟갤러리 전시 의뢰를 받았을 때 한참을 망설이던 아내의 옆구리를 찔렀던 것도 남편이다. 이후 갤러리 비오톱의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27일)전시 참여도 남편의 권유로 성사됐다. 올해로 88살이 된 '봉화씨'의 일상은 오는 31일까지 해녀박물관에서도 만날 수 있다.
고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얘기는 말로 다 못한다. 아직 부족하지만 이렇게 어머니를 기억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제주 어머니들은 자신의 몸을 움직여 벌이를 한다는 것을 자부심으로 한다. 어머니에게 배운 것처럼 계속해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