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베혀내어
춘풍(春風)/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조선조 기생 황진이 시조 ‘동짓날 기나긴 밤을’

▒동지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짓날 밤이 얼마나 길었으면 한 여인의 시상(詩想)을 이렇게 절절하게 풀어낼 수 있을까.

 동지는 한 덩어리 베어내 둘 정도로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음력으로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때 동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동짓날 낮 시간은 9시간 45분쯤으로 일년 중 밤이 가장 길어 음의 기운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정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지므로 쇠약했던 양기가 부활하는 절기이다.

 동지는 고대 때엔 설로 삼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아세(亞歲-작은 설)라고도 한다.

 예부터 동짓날에는 팥죽을 먹었는데 팥죽을 쑤어서 먼저 사당에 올리고, 그 다음에 각 방과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담아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서 먹었다.

 동지 팥죽에는 찹쌀로 동그랗게 굴린 ‘새알심’을 만들어 넣는데 새알심을 나이 수대로 먹는 풍습에서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라는 옛 말이 비롯되었다.

 동지 팥죽은 중국 고대 요순시대 때 형벌을 담당했던 신화적인 인물 ‘공공씨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공공씨의 아끼고 아꼈던 아들이 동짓날 죽어 귀신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이 귀신은 생전에 팥죽을 싫어했기에 동짓날만 되면 팥으로 죽을 쑤어 귀신을 좇는 풍속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띄고 있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졌고, 귀신뿐 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치는데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동지에 다 팥죽을 먹는 것은 아니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아기동지 또는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는데, 올해가 바로 그 애동지에 속하기 때문이다.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시루떡을 쪄 먹었다 한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아이들에게 나쁜 일이 생기고 그 해 농사가 잘 안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주의 동지 이야기
 예부터 도내에서는 동짓날 밤, 동네 사람들이 아늑한 집안에 모여 앉아 재미있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 때 여러 재미있는 얘기들 가운데는 꿈꾼 말도 튀어나오기도 했다.

 모인 사람 중 할머니들은 ‘머리 검은 개 지붕 넘나 하는 게’라는 말을 처음에 반드시 하고 난 다음 꿈꾼 말을 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그래서 누구나 꿈 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머리 검은 개 지붕 넘나 하는 게’라고 말했다.

 밤을 무서운 시간으로 아는 사람들이 으스스한 얘기를 들었어도 공포에 떨지 말라는 할머니들의 지혜였다.

 오늘날도 마을에서는 밤에 꿈 꾼 얘기를 하게 되면 반드시 ‘머리 검은 개 지붕 넘나 하는 게’말을 꺼내, 무서움을 물리친 다음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민속이 남아 있다.

※도움말=제주민속 박물관 진성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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