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띠니까 드세서 못써” “빨간 말띠는 그래도 괜찮지만 백말띠 며느리는 안 돼”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는 말띠 여성들은 억울하다. 말띠는 왠지 과격할 것 같고, 팔자가 드셀 것 같은 편견 때문이다.

 ‘그런 근거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는 순진파도 있다. 그러나 많은 미혼남들이 말띠 여성과의 결혼을 피하고, 말띠 딸을 낳지 않으려 중절수술을 감행하는 행태는 아직도 말띠에 대한 편견의 뿌리가 얇지 않음을 의미한다.

 특히 말띠여아 기피 풍조는 심각할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말띠였던 지난 90년 남녀출생성비는 여자 100명당 남자 116명으로, 지난 10년 간의 평균 113.3명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남아선호사상이 유난히 높은 영남지방은 125명 이상으로 월등히 높다.

 내년은 그 중에서도 말띠 중에서도 가장 드세다는 ‘백말띠’의 해. 1966년 생 여성에 이어 내년 2002년에 태어날 아이들은 백말띠라고 불리다. 이런 이유로 벌써부터 딸 출산을 걱정하는 산모들이 많다 한다.

 그러나 역술인에 따르면 적말띠, 흑말띠, 백말띠 등 말띠들도 5행에 따라 색이 정해질 뿐 백말띠가 드세다는 근거는 없다. 더욱이 66년생은 백말띠도 아니다.

 조선시대 역대 왕조의 왕비들을 보면 말띠 여성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그럼 말띠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 왔을까?

 역술인들은 잡신이 성행했던 일본의 통치기간을 통해 한국에 뿌리내린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의 여성 비하적 남녀차별 경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면 역학적으로 보는 말띠 여성들은 어떨까. ‘화(火)’를 뜻하는 말띠 여성들은 명랑함과 ‘매력’을 상징한다. 20∼30%는 유행의 패션을 달리거나 손재주도 뛰어나다. 여성의 바람기를 금기시해 왔던 그 당시에는 이 같은 여성의 섹시함이 통하지 않는다.

 연예인들 중에 말띠가 많은 것도 이를 방증하는 것. 시청률 1위를 달리는 ‘여인천하’의 강수연과 도지원이 대표적인 말띠 연예인이다.

 옛날과 과거에 대한 시각은 물론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조차 바뀌는 시점에서 유독 말띠 여성들에 대한 편견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4500만 인구 중 오직 12개의 띠만으로 자신의 성품과 인생을 저울질하고, 앞으로 태어날 딸들의 생명을 끊는다는 것은 21세기 여성의 시대와는 대치되는 전근대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임오년 아침, 말띠와 백말띠 이야기에 대한 편견을 향한 말띠 여성들의 힘찬 뒷발질을 느껴보자.

◈25살 말띠 오희정씨(유치원 교사
 “띠는 나이를 나타내기 위해 붙여진 것 아닌가요?”

 신세대들은 그만큼 띠에 대한 편견에 무감각하다. 24살 오희정씨도 띠란 그저 날짜며 해를 표시하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다. 내년 백말띠의 해도 그저 자신의 해라고 생각해 빨리 오기만을 바랐다 한다.

 “우리 띠가 오면 더욱 활기차고 자신감이 생길 것 같기 때문이죠. 반가움과 기대감 때문에 요즘 기분 좋아요”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팔자 사나운 말띠’라서 결혼을 늦게 해야 한다고 신신당부의 말을 들어온 오씨는 ‘자신의 띠가 그렇게 문제가 있는가’하는 고민 아닌 고민을 갖기도 했다.

 “4000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세상인데 12개의 띠 하나로 인간의 성품과 운명을 좌우하다니 그럼 몇 백만 말띠 사람들은 모두 팔자가 세다는 말입니까”. 또 오씨는 태어날 해만으로는 운명을 제대로 점칠 수 없다고 사주팔자의 개념도 설명했다.

 설사 결혼을 늦게 해야한다고 해도 오씨에겐 그것이 큰 고민거리가 못된다. 애당초 결혼에는 아직 생각이 없기 때문. 유치원 교사인 오씨는 공부에 뜻을 두고 있는 새파란 청춘으로, 장차 어린이 보육에 관한 전문가가 되는 게 꿈이다.

 자신의 어머니도 말띠라는 오씨는 “말띠인 당신께서 팔자 운운하시는 건 너무 억울하다”며 “아마 꿈이 높은 말띠 여성으로서 어머니가 그 꿈을 못 이루셨기 때문에 딸인 나에게 기대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4살 위인 범띠가 가장 적당하다고 들어왔지만 정작 자신의 남자친구는 쥐띠. 남자친구를 ‘길들이기’ 위해 자그마한 남자친구의 띠를 이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말발굽으로 밟아줄까?’식의 협박투로 말을 하면 남자친구는 기를 펴지 못한다고.

◈37살 말띠 좌옥미씨(주부)
 ‘절묘한 순간에 뛰어오르는 말의 발돋움’.

 바로 주부 좌옥미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8년 동안의 육아전쟁을 치른 후 36세의 나이에 다시 대학에 들어간 그의 모습에서는 말띠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행정학도였던 좌씨가 선택한 전공은 생활음악과. 어릴적부터 음악을 공부해보고 싶었다는 좌씨에겐 당연한 도전 절차인 셈이다.

 “남자들도 계속 갖기 힘들다는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지금까지 잘 굴러가는 걸 보면 말띠 여자들이 활달하고 적극적인 것 같긴 하다”는 좌씨는 자신 또한 말띠의 전형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면 몸이 근질거리는 타입이예요. 말띠 본성답게 집에서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성격이죠”. 좌씨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수납장이나 서랍장 등 가구를 만들거나 이것저것 손재주를 키울 수 있는 것에 몰입하는 억척스러움을 웃으며 말했다.

 좌씨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을 ‘말띠 가시내’를 가족들에게조차 들어보지 않았다. 그가 정작 띠에 대한 선입견을 들은 건 범띠인 딸 아이 혜지를 낳고 주위에서 들은 첫 마디 였다. “키우기 힘드시겠네요”

 한때 여성단체에 몸담을 정도로 개혁적(?)적이었던 좌씨는 이같은 편견이 오히려 낯설다는 반응이다. “띠에 대한 개념도 호주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건너온 잔재물인데, 그것이 지금까지 대물림돼 체화된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좌씨는 말했다.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딸에게 띠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 문제 같아요. 맞지도 않는 이야기로 딸의 운명을 확정짓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될 뿐인데…”. 특히 같은 여성으로서 어머니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좌씨는 자신의 딸 혜지에게는 절대로 범띠다 뭐다 띠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49살 말띠 김순국씨(전문직제주여성클럽 회장)
 말띠 여성들은 자신의 나이대가 모두 백말띠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48세 말띠 여성인 김순국 전문직제주여성클럽 회장(전승화 외과의원 사무장)도 마찬가지. 여지껏 백말띠로 알고 왔다는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굉장히 성격이 세겠다”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본의 아니게 심리적인 피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당시엔 띠에 대한 선입견이 더욱 심했죠. ‘팔자가 셀 것이다. 빨리 결혼하면 실패하니까 늦게 결혼해라’등등. 늘 그런 말을 듣다보니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삶이 그리 순탄치 만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큰 키에 당당한 체구의 김 회장은 그러나 평탄치 않은 운명을 시계추를 반대로 돌리듯 기회로 서슴없이 바꿨다. ‘활달하고 왈가닥’이라는 성품에 대한 편견을 여성들의 리더십에 필요한 요소로 위안을 삼았다. 이왕 결혼을 늦게 하게 됐으니 남과 다르게 살자, 평범한 삶을 이루지 못하면 내 마음대로라도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살자고 암시해왔다.

 남들이 결혼이라는 배를 탈 때 김 회장은 28살에 홀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말띠 딸의 ‘늦은 결혼의 운명’을 주장했던 부모님들은 당연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간호학 공부 4년, 코넷티컷에 정착해 살려고 했던 32살의 김 회장은 어느 날 개띠 신랑을 만나 늦둥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김 회장은 신세대 주부들이 말띠 여아 출산을 싫어하거나 말띠 여성과의 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태권도에서 리더십을 배우는 시대에 무슨 띠 타령이냐”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내년에는 말띠 여자아이들이 많이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여성의 시대에는 전형적인 주부가 아닌 남성의 강인함과 여성성을 조화시킨 양성적인 여성이 뜨기 때문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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