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30대의 스웨덴 노동장관이 육아 때문에 장관직을 사퇴하고 앞치마를 입은 모습이 TV에 나왔을 때 우리나라 사대부(?) 후손들은 ‘집안망신 시키는’ 꼴불견이라며 혀를 찼다.

 그로부터 10년 후 ‘그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가 바로 이웃에서 일어나고 있다. 육아일기를 쓰는 아빠는 흔한 일이 된지 오래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스스로 포대기를 둘러 입거나 아예 육아전담을 위해 직장 문을 나서는 젊은 아빠들이 늘고 있다. 올 들어 육아휴직을 받은 남성은 전국에서 75명. 경력위주의 직장풍조 속에서 육아휴직을 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애 보는 남자, 이제는 다르게 봐야 할 때다.

△아내대신 둘러맨 육아 총대
 한때 경찰관이었던 현진희씨(35·제주시 연동)는 일을 그만둔 지 9년이 지났다. 파출소장의 꿈을 접고 직장을 그만 둔 건 ‘백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육아 때문.

 “둘 중 한 사람은 직장을 그만둬야할 상황이었습니다. 10여년 미용일을 해온 아내를 집에 눌러있게 할 수 없었어요. 마침 예전에 하고싶었던 공부도 있고 해서… 내가 ‘총대’를 맸죠”

 아내 대신 젖병과 포대기를 둘러맨 현씨는 그러나 4개월 된 딸 아이 지현이와의 치열한 전쟁에서 뜨악하고 말았다. 하루에 서너번의 청소는 기본이고 엄청나게 쏟아내는 아이 기저귀며 빨래, 어쩌다 목욕하면서 아이 귀에 물이 들어가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 하던 게 일이었다.

 그러나 현씨의 육아에 대한 두려움은 곧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바뀌었고, 현씨의 사랑은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라는 자양분이 됐다. 하루하루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 높이 만큼 써 내려간 현씨의 육아일기는 지난해 제주시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씨가 두 아이 모두 누워서 떡 먹듯 키워낸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현씨가 불편했던 건 주위에서 바라보는 눈빛. 빨래를 널기 위해 옥상에 오를 때면 매일 마주치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도대체 뭐 하는 남자지’하는 눈길이 괴로웠다. 그걸 피하기 위해 뒤쪽으로 몰래 빨래를 널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생전 육아를 전담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8년의 육아생활을 그러나 현씨는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에서 도를 닦았다 말한다. 또 엄마들이 왜 살이 찌는지, 주부 우울증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한다.

 “남들은 사회생활 하면서 잘 나가는데 자신은 집에서 아이들 키우며 꿈과 능력을 접는다고 생각하면 서글픈 것도 당연하죠”

△남성의 남성 향한 시선 바꿀 때
 딸 ‘미르’의 성장과정을 일기에 담아온 김모씨(39·화북동)는 최근 「태아와의 속삭임」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평범한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내용이지만 열달동안 미르를 간직해온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고 출간 목적을 말했다.

 선진국에서 두 아버지 중 한명 꼴로 아버지들이 육아휴직이나 휴가를 내던 시절에도 우린 할인매장에서 아내와 함께 카터를 끌며 장을 보는 남편들마저 ‘체통 없다’고 비웃었다. 그런 그들이 지금은 포대기로 아이를 업고 있다.

 제주에서 남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받은 김모씨(34·용담1동). 아내와 교대로 육아휴직을 내기로 하고 1년 동안 애를 돌봐온 김씨는 올초 다시 직장으로 복귀한다.

 이렇게 결국 둘 중 한 명은 ‘가사와 육아’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돼있다.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에게, 아니면 놀이방에 아직 부모 얼굴도 분간하지 못하는 어린 자식을 맡기고 사는 육아전쟁 속에서 부부가 내리는 종착역인 셈이다. 육아가 맞벌이 부부에게 절대적인 문제가 되면서 정부에서도 3개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급여제 등 제도적 융단을 깔아주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남자들 스스로 육아분담의 책임을 등에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육아 전담에 뛰어들고, 아내가 사회전선에 나가는 역전(役轉)의 모습은 맞벌이 시대가 낳은 생존 전략일 수도 있지만 ‘육아는 여성, 가장은 남성’이라는 전담의 역사가 깨지고 서로의 자리를 경험해보면서 남녀평등의 의미를 가질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남자들의, 남자들을 향한 시선이다. 보수적인 남성들은 “수천년 동안 여성의 몫이었던 육아와 가사문제가 언제부터 남성에게 전가됐느냐”라며 육아휴직 받은 남성들을 나약한 도매금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1년 경력이 1년 승진을 앞당기는 경력사회에서 육아휴직 받은 남성 역시 같은 남성들에게 ‘흥미로운 관찰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육아휴직을 받거나 육아를 전담하는 남성들을 보면서 급조된(?) 남녀평등의 풍조라며 겁을 먹고 있는 남자들이 있지만, 결국 이것이 올바른 길이라며 과감히 회사에 휴직서를 내는 남자들도 있다.

 그러나 육아를 선택한 ‘나약한(?)’ 남자들은 말한다. 내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사소한 희생을 한 당당한 선택이라고. 행복한 삶이 무엇인가를 아는 ‘아름다운 선택’이라고.

 영화 ‘미스터 맘마’의 모습은 더 이상 영화로만 존재하지 않는다.<글=김미형·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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