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조리 포구

 겨울바다는 호젓하다. 파도소리만이 가득하다. 바다가 토해내는 신음소리와 가슴앓이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겨울바다. 그래서 쪽빛 바다에 마음이 찡해진다. 성산일출봉에서 떠오른 해의 햇살이 드리우면 가장 먼저 닿는다는 오조리 바다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 드넓은 갈대밭과 썰물이면 속살을 드러내는 길다란 모래사장, 식산봉, 오조포구…. 해안가 곳곳에 겨울 정취가 가득하다.

 물 빠진 성산포 오조리 작은 어촌에는 모래사장에 걸쳐있는 텅 빈 고깃배 몇 척과 지친 갈매기들이 성산일출봉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장엄한 일출 속에서 점점 빛을 더해 가는 듯 싶더니 거짓말같이 해가 구름에 숨어버렸다. 오조리 마을의 일출은 짧았지만 깊은 감동만큼이나 아쉬움을 길게 드리운다.

 이제 오조리는 동부일주도로를 낀 마을 중에서도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 지척에 소섬이 누워 있고, 성산포와 일출봉을 마주하고, 아담한 식상봉과 푸른 바다를 함께 아우르고 있어 말 그대로 ‘산도 좋고 바다도 좋은 곳’이다. 게다가 한적한 편이어서 호젓하게 겨울바다의 낭만과 정취를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동부일주도로에서 오조리로 가려면 손가락 형상을 한 다섯 개의 진입로를 이용해야 한다. 오로삿질, 병문질, 잠수막질, 우칫질, 또 고성리를 잇는 소금막질이 그것이다. 이 길들은 동북에서 서남쪽으로 마을을 가로지른 ‘안가름질’에 연결되며 여기서 다시 해안으로 이어진다.

 입구에서 200m정도 들어가면 마을을 볼 수 있다. 마을을 둘러싼 것은 오조양어장. 언뜻 봐도 수만평은 됨직하다. 바다 한가운데 몇 개의 둑을 쌓아 양어장으로 만들었다. 또 그 뒤로 이어진 광활한 갈대숲. 바람이 헤집고 지나가면 갈대가 이리저리 쓸려가며 춤을 춰댄다. 길다란 띠를 이룬 갈대숲은 또 하나의 바다처럼 보인다. 바람에 휩쓸리는 갈대숲은 높낮이가 뚜렷한 파도처럼 느껴진다.

 오조포구는 작고 아담한 것이 초행이지만 왠지 친숙한 느낌을 준다. 서너 척의 작은 어선과 갯벌, 미니 선착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또 쌀쌀한 바람이 부는 겨울 포구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들의 바지런한 모습에서 삶에 대한 따뜻한 감성도 느껴볼 수 있다.

 오조리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다. 식산봉 맞은편 바닷가 언덕인 ‘쌍월’이 바로 그 곳. 일출시각만 맞추어 오조포구 방파제에서 동남쪽 바다를 주시하면 그 사이를 비집고 검붉은 해가 수평선위로 떠오른다.

 어머니 품 같은 포근함이 그립다면 오조양어장과 포구를 넉넉한 가슴으로 품고 있는 식산봉에 가볼 일이다. 그러나 식산봉 진입로에 공사가 한창이어서 오름 특유의 안온함을 느끼기엔 부족하다. 표고 60m의 나지막한 오름인 식산봉은 보리수나무·참식나무·생달나무·곰솔 등으로 우거져 있고, 거기에 황근이 서식하고 있어 또 다른 정취를 준다. 겨울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오조리 마을 진입로는 성산포 해안 일주도로와 연결돼 천천히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마을 안길에서 나오면 ‘주군디물’과 ‘족지물’‘재성물’‘엉물’들이 잇따라 나온다.

 걸어서 20분쯤 가니 성산포를 잇는 한도교에 못 미쳐 하얀 속살을 드러낸 모래사장이 나온다. 쪽빛 물빛에 물들어 모래도 은빛. 썰물 때면 수만평의 광활한 모랫벌이 드러난다. 날씨가 차 인적이 없어 쓸쓸함이 더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모래들을 몇 번 뒤적이자 대합이 흙을 뒤집어 쓴 채 꼼지락거리며 나온다.

 하지만 외로움을 덜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철새다. 마을 사람들은 더러 황새나 저어새, 고니 등도 찾아온다고 말하지만 어디에 숨었는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이들은 이렇게 갈대밭에서 석달 남짓 보내다 자신의 고향으로 옮겨간다.

 어느새 오조마을에 그림자처럼 낙조가 찾아들었다. 하루를 달린 지친 태양이 침몰한다. 소란했던 갈대밭도 이젠 잠잠하다. 오조의 낙조는 또렷한 붉은 것이 자랑. 그 붉은 빛이 바다를 쏘이다가 물기를 머금은 모랫벌까지 올라온다. 하루는 이렇게 잠들어갔다.<글=정용복·사진=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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