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
 사랑하고 싶은 여자가 다른 사내들에게 짓밟히도록 지켜볼 뿐이다, 감히. 그러나 스스로는 여자의 육체에 손끝하나 대지 않는다, 차마. 이것은 나쁜 세상에 대한 경멸이고, 훼손될 수 없는 사랑이다. 

 「섬」「수취인불명」등의 김기덕 감독이 들고 온 「나쁜 남자」는 그런 영화다. 자신이 선망하던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모욕을 당하자, 선화를 사창가에 팔아 넘기는 깡패 ‘한기’의 이야기. 청순한 여대생에서 ‘한번에 6만원짜리’로 남자들에게 능욕당하는 선화를 한기는 밀실의 이중거울을 통해 낱낱이 지켜본다. 그러나 자신이 망가뜨린 여자를 보면서 한기가 갖게되는 건 자학이다.

 자신을 창녀로 만든 인간쓰레기에 대한 경멸과 애증이 교차하던 선화가 훗날 사창가를 벗어날 기회를 굳이 포기하는 장면에서 이 영화는 지독한 사랑을 보여준다. 한기가 살인죄로 구속되자 면회를 간 선화가 “누구 맘대로 거기서 죽어”라며 절규할 때, 결국 하나가 된 한기와 선화가 트럭으로 부둣가를 떠돌며 ‘이동식 매춘’에 나서는 결말부는 이미 많은 논란을 낳았다. 그야말로 나쁜 남자를 만드는 것은 선화 자신이며, 동시에 그들은 깡패든 창녀든 어쩔 수 없이 흘러 들어온 더러운 삶으로부터 탈주나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인생에서 더 좋은 것을 바라지 않으며 함께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랑의 진심이 그 어떤 순정보다 초월적이고 아프다. 

 오는 2월 베를린영화제 본선 진출 등으로 예고전을 치른 「나쁜 남자」. 독특한 에로티시즘에 기반해 인간 내면의 양가성을 들여다보는 이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전작들보다 덜 어렵되, 더 마음을 끈다.

 「악어」「수취인불명」등 김기덕 전속배우인 조재현은 「나쁜 남자」가 ‘조재현의 영화’라는 갈채를 받았다. 

 대사라고는 “까, 깡패 새끼가 무슨 사랑이야”라는 단 한마디. 오로지 섬뜩하고 고통스런 눈빛 연기로, 나쁜 남자에게 날아오는 단죄의 돌팔매를 막아낼 수 있는 배우가 조재현 말고 또 있을까. 11일 개봉.

◈「디 아더스」
 온갖 특수효과가 난무하는 영화들 속에서 「디 아더스」(The others)는 정통 공포영화를 표방한다. 칼자루, 핏방울 하나 내비치지 않으면서 마음을 베는 서늘한 공포감. 진짜 공포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에 있다.

 안개 자욱한 영국의 외딴 저택. 햇빛을 보면 죽는 희귀병에 걸린 아이들은 두꺼운 커튼과 예민한 엄마(니콜 키드먼)의 보호 속에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세 명의 떠돌이 하인들이 집안에 들어온다.

 그때부터 악몽은 시작된다. 잠긴 문이 스스로 열리고, 귀신이 집안에 있다는 딸아이는 “엄마는 미쳤다”며 “하인들이 갑자기 떠나버린 그 날”을 말한다. 다락방에서 죽은 사람들을 찍은 사진첩이 발견되고, 문득 집안의 커튼이 죄다 사라진다.

 「식스 센스」에 비견되는 반전은 그러나 상상을 불허한다. 친숙한 사람들이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 그것이야말로 악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 타자들이 될 수 있다는 결말부는 영화를 리플레이하고 싶게 만든다.

 관객의 두뇌 동선을 간파하고 앞질러 복병을 배치하는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용병술이 놀랍다. 이 감독의 전작 「오픈 유어 아이즈」에 반한 톰 크루즈는 「바닐라 스카이」 리메이크 외에 이 영화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전남편의 후광을 입었던 니콜 키드먼은 창백하고 우아하지만 강인한 모성 연기로 올해 골든글로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1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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