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이가 무슨 큰 도움이 돼. 봉사를 한 게 아니라 봉사를 받는 게지”

 예방 접종을 하러 온 아이의 배를 연신 쓰다듬으면서 청진기를 대는 78세의 장우삼씨(제주시 삼양동)는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한다고 취재를 하냐’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팔십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이에, 50세를 넘으면 ‘노인’취급을 하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게 ‘축복’이지 않느냐는 장씨다.

 의사생활 정년을 훨씬 넘긴 장씨는 이제 국민 건강의 전주대 역할을 하는 제주시 보건소에서 예진을 맡고 있다. 의사 시절보다야 벌이는 ‘봉사’수준으로 터무니없이 낮지만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할 정도로 장씨는 주어진 일이 너무 고마울 따름이다.

 예방 접종을 하는 말 못하는 아이에서부터 독감환자, 노인환자가 장씨의 진료 대상. 그저 배에 청진기를 대어보는 것이 전부이지만 심장이 잘 박동하는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지, 기관지엔 이상이 없는지 꼼꼼히 체크하는 모습은 여느 의사선생님과 다를 바 없다.

 “요즘은 좀 뜸하지만 9∼10월 독감예방주사 기간이 되면 하루 1000명이 왔다가곤 해”

 20년 전, ‘사람들이 순박할 것 같아서’ 내려온 제주 땅은 이제 자신의 뼈를 묻을 인생의 종착지가 됐다. 의사(醫師)라는 ‘기술’ 덕에 친구가 있는 나사로병원에서 몇 년간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가졌었다.

 20년 동안 진료를 하다보니까 보건소에서 예방주사 맞으러 온 노인들도 장씨를 턱하니 알아본다. “진료하다보면 이젠 늙은이가 다된 친구들이 간혹 보여. 여기서 일하는 날 보고 ‘부럽다’고만 해.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장씨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관리할 수 있고 ‘이 나이에 일을 한다’는 모습을 노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자치단체에서 노인강좌를 맡을 때마다 장씨가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노인들은 생활문화가 없어. 노인회관에 가보면 낮잠이나 자고 장기나 도고 잡담하는 게 일이지. 그게 무슨 삶이야. 죽은 삶이지. 젊었을 때부터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된다구”

 장씨는 제주 노인들은 그나마 자연을 벗삼아 행복한 것 같다고 한다. 노인들이 손주들이나 보고 멍하니 하늘만 볼 게 아니라 스스로 활동하고 자신만의 문화를 가꾸는 힘을 길렀으면 하는 게 장씨의 소망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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