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주인공은 제주시 연동에 사는 양도남씨(57). 80년대 초 중동지역에 한창 건설경기가 붐을 일으킬 때 현지 기술자로 파견근무할 때의 모습이다.
인구 1100만에 남한의 20배가 넘는 국토, 석유자원만이 아니라 그 양을 측정하기조차 어렵게 매장돼 있는 금과 철, 꾸준하게 추진되고 있는 국가적 현대화 사업, 컴퓨터 생활화의 시작…. 현재 사우디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발전을 가져오기까지는 80년대를 전후한 한국인들의 건설지원이 이뤄졌기에 가능했다.
양씨는 79년부터 82년까지 3년 동안 한일개발 기술자로 사우디 서부 지다지역에 위치한 알타이프 공군기지 건설을 위해 현지파견됐었다. 기회가 닿으면 사우디를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는 양씨. 2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중동지역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사우디는 사막지역이 대부분이어서 물이 매우 귀중했다”면서 “사진은 맨땅에 구멍을 뚫고 지하수를 펌프로 막 끌어올리는 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사우디는 바닷물로 농사를 짓고 식수를 사용하는 등 물이 매우 소중했다고 한다. 연간 수백억 달러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도 식수공급을 위해 애간장을 태웠다는 것. 그러나 식수공급을 위해 물을 지하에서 퍼 올리는 것도 역시 한국인의 몫이었다.
양씨는 “기억으로 당시 깨끗한 물은 아니었다”며 “돌가루가 묻어나고 바다 인근 지역이 아니어도 염분기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물을 뽑아 올리는 순간,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 한국인들의 기술력에 놀라워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있었던 지다에만 각 기업에서 파견된 1만명에 이르는 한국인 기술자들이 있었다”며 “주로 빵과 양고기를 먹고 잠자는 것도 불편했지만 한국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를 양씨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사우디에 기술력을, 사우디는 한국인들에게 돈을 준 것이었다. 양씨의 말속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사우디에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쉽게 묻어났다. 한마디로 사우디 대도시의 큰 건물들 중 절반 이상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우리 경제발전에 큰 몫의 도움을 준 사우디를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잊고 있다”고 말하는 그는 “다시 한번 사우디를 느껴 보았으면 한다”고 끝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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