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성장을 위한 독서 산책 (36) 크리스티 조던 펜턴, 마거릿 포키악 펜턴'나쁜 학교'

학교안 '강요'에 맞선 한 소녀의 통쾌한 한방
인권 박탈당한 사람들이 부르는 치유의 노래

자극적인 말들과 모습들이 넘쳐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매체에선 소수의견이 다수로, 다수의견이 소수로,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필요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고 있기도 하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운 답답하기 만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학교란, 그리고 사회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나쁜 학교. 먼저 제목과 표지만으론 일반적인 학교 폭력에 관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우리의 모습 그리고 사회의 모습이 녹아있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화자인 올레마운은 로지 언니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그래서 언니처럼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고 싶지만 부모님은 왠지 그녀가 학교에 가는 것을 계속 반대한다. 그렇지만 올레마운은 아빠를 계속 졸라 어클라빅에 있는 원주민 기숙학교에 가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하지만 학교는 올레마운의 생각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힘든 노동을 해야 했고, 자신들의 문화가 아닌 서양식 교육을 주입받아야했다. 올레마운도 길게 땋았던 머리칼을 잘리고, '마거릿'이 되어 두툼한 옷이 아니라 흘러내리는 스타킹과 얇은 교복을 입어야했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는커녕 학교 옆 병원에서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며 일해야 했다. 결국 올레마운은 몇 년을 학교에서 보내고 그리던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만, 엄마가 못 알아 볼 만큼 모습도, 입맛도 변해 있었다. 하지만 궁금해하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뒷부분을 읽을 수 있게 된 올레마운은 만족해한다.   

북극에 사는 원주민인 이누이트는 보통 미국 알래스카 주,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와 시베리아 극동에 퍼져 살던 이들이다. 그들이 살던 지금의 캐나다 땅에 외지인들이 들어온 것은 15세기 무렵으로, 미지의 땅을 찾아 탐험을 떠났다가 이 땅을 발견하고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원이 풍부한 캐나다 땅을 탐내고 그 땅을 지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외지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네 문화로 흡수시키거나 원주민들을 쫓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러자 외지인들이 사용한 방법 중 하나가 원주민들의 전통 문화를 없애고 원주민 어린이들에게 서양식 교육을 위한 기숙학교를 세워 원주민들의 색깔을 지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의 학교는 시설이나 질적인 부분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보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학생수만 늘리려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기숙학교는 교육이 아니라 노동이나 허드렛일을 하는 곳에 지나지 않았고, 학교에서의 생활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원주민도, 외지인도 아닌 어느 곳에도 동화되지 못하는 존재로 남겨지기도 했다고 하니, 어른들의 욕심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평생 지워지지 않을 고통과 상처를 남겼다고 하겠다. 

현재의 우리 아이들에게도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른들이 노력하고 애쓰고 있을까. 우리의 아이들이 나에게 그렇게 물어온다면 어떻게 답을 해주어야할까. 훗날의 불투명한 성공과 나아보이는 삶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지내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자신만의 꿈을 꾸고 미래의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 또한 우리들은 그것을 들여다봐주고 같이 고민하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 나누는 어른들일까. 단순히 어른이라는 단어로 그저 아이들을 붙잡아 두고, 스스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아닌 그저 의미 없는 수용만 하게하고 있진 않은가. 

이 책 속의 까마귀 수녀의 모습이 나의 모습은 아닌지 순간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온화한 맥퀼런 수녀처럼 간섭과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어른으로 그어 놓은 그 줄에 맞춰 걸어가기를 바라며 티 나지 않게 밀고 끌어당기고 있진 않았을까. 학교에 간 첫날 밤, 침대 아래에서 가족들과의 따스한 시간을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올레마운의 눈을 바라보지 못하고 까마귀 수녀처럼 알아듣지 못할 소리만 꺅꺅 지르고 있진 않은가. 

" 이 돌멩이 보이니? 이 돌멩이도 한때는 끝이 날카롭고 뽀족한 돌덩이였단다. 하지만 바닷물이 철썩철썩 때리고 또 때려서 모진 부분을 다 없애 버렸지. 이제는 그저 조그만 돌멩이에 지나지 않아. 이게 바로 외지 사람들이 학교에서 너에게 하려는 일이란다."

아이들 각자만의 고유하고 깊이 잠재되어 있는 향기를, 어른들만의 가치관으로 보기 좋게 깎아 내고 뭉툭하게 다듬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각각의 색을 발하게 하기 보다는 함께 라는 단어 속으로 빛 바래지게 덮어버리고 섞어 흐릿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단순화되고 일반화되어있는 세상의 잣대와 편견을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폭력은 아닌지. 소수에 대한 인정이나 받아들임이 아니라 나와 다르면, 우리와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밀어내는, 우리와 같은 편이 되기 전에는 적으로 가하는 폭력을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유한 자신만의 색을 부정하고 세상에 동화되어 있는 다루기 쉬운 캐서린 같은 아이들로 키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게 하고 있진 않은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폭력적인 말들과 행동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다. 이거 아니면 이거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만으로 세상의 모든 부분들을 재단하고 있지 않은지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이나 입술의 움직임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것에 대한 해석과 반응은 발화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회의 영향만으로 받아들인 채로 말이다. 

"하지만 아빠, 바닷물이 돌멩이 자체를 바꾼 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전 돌멩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요. 전 바닷가에 영원토록 쳐박혀 있지 않을 거예요."

돌멩이는 깎이고 다듬어지더라도 돌멩이로서의 본질적인 모습은 잃지 않는다. 우리의 아이들이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자신을 차별하는 까마귀 수녀가 건넨 빨간 스타킹을 불태워 버리거나, 마음과 다른 편지를 부모님께 보내라는 요구에 수신인만 적은 편지를 내는 올레마운처럼... 자신에게 부당한 부분에는, 스스로를 먼저 세우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자신을 향한 구박이나 괴롭힘에 그저 주저 않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에는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바로 세우고 용기 내어 행동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어른들이 우려하는 학교 폭력이 아니라, 어른들만의 사회가 보내고 이끄는 움직임에 그저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걸음을 걷고 자신만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그렇다고 반항이나 단순한 거부가 아니라 자신만의 소신과 다짐을 담은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그럼으로 조금 더 다양성이 존중되고 각자가 인정받는 따스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기 위해 우리 아이들의 손에 무엇보다 문제집보다 책이 들려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또한 바래본다.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푸른 북극광을, 또는 찬란한 태양을 찾을 수 있기를... 

'환자를 돌보는 일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도망치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요정 이야기나 모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들고 창가로 갔다. 그리고 컴컴한 어둠 속에서 푸른 북극광에 기대어 책을 읽어 보려 애썼다. 책을 읽을 때만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밤중에도 책장을 밝혀 줄 찬란한 태양이 어서 돌아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다.'  

이 책은 저자인 마거릿 포키악 펜턴의 실제 경험담으로 씌여졌다고 한다. 원주민 기숙학교의 모습을 알리기 위해, 학교생활 속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고통 받고 있는 많은 이누이트들이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를 꾸려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라 한다.

상처 받은 후에 치유를 하는 건 어렵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며 거기에 쏟아지는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이야 이루 말 할 것도 없다. 우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기보다는 먼저 사랑과 관심을 전하는 어른들, 사회이기를 바래본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내몰지 않기를. 흔들리는 사회 따라 흔들리는 아이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또한 욕심일 런지... 김시은 <산책>회원 독서논술전문가

작가 소개

■ 크리스티 조던 펜턴

크리스티 조던 펜턴 저자 크리스티 조던 펜턴은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미국을 거쳐 지금은 캐나다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시어머니인 마거릿 포키악 펜턴과 함께 《나쁜 학교》 《두 개의 이름》을 썼다. 요즘은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쓰고 있으며,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장편 소설과 단편 모음집도 준비 중이다. 

■ 마거릿 포키악 펜턴

마거릿 포키악 펜턴 저자 마거릿 포키악 펜턴은 캐나다 북부 뱅크스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홉 살이 되던 해 캐나다 본토로 떠나 어클라빅에 있는 원주민 기숙 학교에 들어갔다. 이십 대 초반에 툭토약툭에 머물며 영국 무역 회사 허드슨베이에서 일하다가 결혼해 여덟 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며느리인 크리스티 조던 펜턴과 함께 《나쁜 학교》 《두 개의 이름》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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