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5. 영화가 역사를 만나는 방식

기록·극의 방식으로 생산·보존·유통 진행
무수한 재해석 허용 '팩션으로서의 역사'

제19대 대선이 끝나면서 주변의 분위기가 사뭇 들떠 있다. 국정 역사교과서가 폐지되고, 세월호에 갇힌 영혼들이 속속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 알 수 없는 안도감 혹은 평온감을 느끼면서도 잠시 잊혀졌던 뼈아픈 기억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기억하고 싶지 않더라도, 망각의 늪을 헤집으면서라도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일들이 많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는 푸른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외면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닌 것이며,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역사기록물로서도 의미 있는 매체다. 오랜 기간 역사기록이 문자매체에 의존해왔다면 이제는 영화매체를 통해서도 생산·유통·보존되고 있다. 역사기록물로서 영화는 내용상 크게 기록영화와 극영화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최근의 경향은 기록영화와 극영화 양자가 더욱 미묘하게 융합되는 양상이다. 기록영화가 역사적 사실의 폭로에 초점이 맞춰져 제작된다면 극영화는 이야기를 통해 미세한 감정선에 접근, 이해와 공감의 극대화에 있다. 그 접점에서 성공한 영화가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다. 

망각과 회복을 위한 애도

알랭 레네 감독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은 '시간의 공간화' '기억을 통한 망각' '언어화를 통한 치유와 애도'의 서사로 축약할 수 있다. 1957년 8월 히로시마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두 남녀의 거칠게 반짝이는 나체의 뒤엉킴으로 시작한다. 이어서 알 수 없는 두 남녀의 대화,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못봤어" "난 히로시마에서 병원을 보았어요" 등으로 "못봤다"는 남자의 진술과 "봤다"는 여자의 진술이 서로 대립되면서 흘러간다. 여자가 봤다고 하는 것은 병원, 박물관, 평화공원, 오타 강에서 본 히로시마 원폭 피해의 흔적들이다. 

그녀(에마뉴엘 리바 분)는 히로시마에 '평화'를 주제로 한 영화 촬영차 온 프랑스 여자다. 그녀가 히로시마에서 본 것은 히로시마라는 공간에 새겨진 죽음의 흔적들이다. 더불어 그녀의 몸 속에도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상처가 있다. 그것은 '느베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이다.

1944년, 그녀는 고향 느베르에서 자신의 첫사랑인 독일 병사를 잃었다. 적군의 병사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녀는 지하에 감금당했고, 그녀의 애인은 총살당했다. 애인이 죽고, 그녀가 지하에 감금당했을 때 히로시마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그 기억을 히로시마에 와서, 한 남자와의 사랑을 경험하면서 떠오른 것이다. 사랑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일깨우니 망각의 늪이 파헤쳐지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죽음의 도시 히로시마는 독일 병사였던 죽은 애인을 불러들였고, 지금 시작되려는 사랑마저도 부정하게 만든다. 전쟁은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의 상처를 몸에 각인시켰고, 사랑 앞에서도 먼저 이별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영화는 두 남녀의 이별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나는 히로시마, 당신은 느베르", 아마 미래의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기억할 것이다. 

알랭 레네 감독 영화의 묘미는 사실과 추상, 사운드와 이미지, 플래시백과 오버랩의 반복과 절묘한 겹침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1997년 국내 수입됐으나 내용과 스탭, 참여 배우들 가운데 일본인이 많고 일본색이 짙다는 이유로 상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 점이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데 말이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가요 엔카와 서툰 일본인의 영어발음, 'Tea Room' 'Casablanca'라고 씌어진 일본식 가게나 호텔 등이 눈이 크고 환한 프랑스 여배우의 화려함과 겹치면서 '부조화의 조화'를 이뤄낸다. 마치 그녀가 히로시마 원폭에 대해 "확실한 전쟁의 종식" "놀라운 파괴력에 대한 경악" "생소하고 불길한 두려움의 시작" "무관심이라는 공포"로 규정하듯이 말이다. 내용에서만 부조화의 조화를 꾀한 것이 아니라 제작에 있어서도 알랭 레네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공동작업, 기록영화와 극영화적 요소의 절묘한 결합은 '내 사랑 히로시마'의 영화적 묘미를 더한다고 할 수 있다. 

불평등한 죽음 증언

영화는 팩션으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기록된 역사와 기록되지 않은 역사 사이에 상상과 유추에 의한 무수한 재해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역사와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모든 역사는 팩션이다"라고 하는 명제가 성립되는 것이다. 영화가 역사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공적 역사로서의 사실을 서사구조로 변환하면서 이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공적 역사가 주변부로 떠밀어버렸거나 왜곡했던 인물이나 사실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적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고발의 방식으로 증언하는 방식이다. 외국영화로서 최근에 개봉된 '랜드 오브 마인', '콜로니아' 같은 영화도 그와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쇼아(Shoa)'(1985), '레드 툼'(2013)과 같은 영화는 고발성 짙은 증언형식의 기록영화다. '쇼아'는 무려 9시간 26분에 걸친,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극단에까지 끌고 간 온전한 증언영화다. 그 점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의 지상명령인 'Zakhor!'('기억하라!')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역사적 피해를 받았던 민중이나 국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구자환 감독의 영화 '레드 툼'은 해방 이후부터 1953년 휴전을 전후한 기간에 발생한 '민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 사건을 다룬 기록영화다. 민보도연맹원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53년 휴전협정을 전후해 빨갱이 색출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이들은 대다수가 농민이었고, 정치 이념과 관계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6·25가 발발하면서 이승만 정권에 의해 무구하게 희생당했다. 

영화 '레드 툼'은 죽은 자들의 뼈를 찾아 전국의 산과 들, 바다를 헤맨다. 죄 없이 가족을 잃었으면서도 숨죽여 살아야만 했던 가족들로 하여금 끝내 입을 열고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 "극락완생하시오. 그 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사시오. 이게 뭐란 말이오. 아이고… 아이고…"

영화에서 가족의 뼈를 찾아낸 유가족 할머니의 사무친 통곡소리는 가슴을 저민다. 피와 뼈가 묻힌 산천의 숲은 하염없이 무성하고, 죽은 자의 머리맡에 자란 나무는 유난히 검다. 철따라 꽃은 피어나고, 댓돌 위에 곱게 벗어놓은 고무신은 가지런하다. 시신을 거두면 입혀 보내겠다고 만들어 논 수의는 아직도 옷장에 걸려 있다. 이제 살아남은 자가 그 수의를 입을 차례다. 

영화 '레드 툼' 같은 영화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영화다.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함도 있지만 아직도 해명되지 않은 죽음의 이유, 살인의 주체들을 고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한 유가족은 "나는 지금도 무섭다. 그런 세상이 또 올까봐, 지금도 무섭다"라고 말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도 무겁다. 일반 대중들에게 이런 영화가 사랑받을 길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반드시 봐야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기억할 건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말하듯 이유없이 희생당한 '불평등함에 대한 분노'는 대대손손 유전된다. 우리의 역사에서 불평등한 죽음은 너무나 많다. 그들 죽음의 원한은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유전되고 있다. 해결되지 않은 트라우마는 지금, 여기, 각자의 내면에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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