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8. 영화, 기다림의 미학

시·청각적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로 공감 이끌어내
아픈만큼 황홀한 대가…감응과 사유로 전하는 위로

인생은 기다림이다

심신이 피로할 때 필자는 시를 읽는다.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 시가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더니, "오히려 그래서 더 힘들지 않나요"라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나는 시가 위로가 된다는 것에 동의한다. 시는 말없음의 언어, 즉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왜 사는가에 대한 물음에 사람들은 각기 다른 대답을 하지만 그 모든 대답을 통틀어 한마디로 말하면, 무언가를 기다리기 때문이 아닐까. 성공하기를, 좋은 세상이 오기를, 사랑이 이뤄지기를….

황지우의 시 중에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시가 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중략)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 일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 언제 읽어도 가슴 설레고 아슬아슬한 시다. 그토록 기다리는 너(무엇)가 '아무 것도 아니면 어쩌지'하고 절망을 앞질러 생각하다보면 그럼에도 기다림의 이유는 무엇일까를 다시 묻게 된다. 여전히 그 누군가를,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 '가베'(1996)는 기다림을 가르쳐주는 영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인생은 기다림이다"라는 '진부함의 진리'를 던져주고 있는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진부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형식과 내용면에서 오히려 볼거리와 여백, 실제와 환상, 시·청각적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로 감응과 사유를 절로 이끌어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양탄자를 뜻하는 '가베'라는 제목이 함의하듯이 씨실·날실, 다양한 색조감이 특징이다. "삶은 빛깔, 사랑은 빛깔, 남자는 빛깔, 여자는 빛깔, 아이는 빛깔, 인생은 빛깔과 같은 것"이라는 내레이션이 이 영화의 주제문이다. 빛깔과 빛깔이 만나면 새로운 빛깔이 된다. 예를 들어 태양빛과 물빛이 만나면 초록의 신록이 된다. 모든 빛깔은 살고, 죽고, 태어나고, 합쳐지고, 죽고를 반복한다. 

반복되는 삶의 뼈대

영화는 노부부가 강물에서 양탄자를 빠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양탄자에 그려진 말에 탄 두 남녀의 그림으로부터 주인공 가베(사가예흐 드조다트 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베는 이란어로 '양탄자'의 뜻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주인공 가베의 가족은 철따라 이동해야 하는 유목민이다. 이들은 가축들과 양탄자를 짊어지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이들에게 양탄자 가베는 결혼식 예단이기도 하고, 추위를 막아주는 생활필수품이기도 하고, 삶과 죽음을 예우하는 고귀한 물건이기도 하다. 

가베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가베 가족의 무리 바깥에서 배회하며 늑대울음소리로 사랑의 신호를 보내온다. 하지만 가베는 남자를 따라갈 수 없다.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삼촌이 결혼을 하면 시집을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엄마가 애를 낳으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가베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으며 양탄자 짜는 일을 돕고, 가축들과 일곱이나 되는 동생들을 돌보며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아버지는 가베와의 약속을 모른척 한다. 어느 날 밤, 바깥에서 남자가 신호를 보내온다. 가베는 일어나서 도망가고 싶지만 가베는 삼촌의 인기척으로 선뜻 일어나지 못한다. "낮엔 여자들이 지켜보고 있고, 밤엔 남자들이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베는 읊조린다. "삶은 기다림이야"라고. 결국, 가베는 자신을 기다리던 사랑하는 남자와 말을 타고 길을 떠난다. 

붉고, 노랗고, 푸른 양탄자의 빛깔과 설산의 막막함, 투명한 강물에 떠다니는 꽃잎, 늑대울음소리, 유목민 특유의 민속음악, 염소와 양들의 울음소리, 간헐적으로 튀어나는 파열음, 노부부가 주고받는 만담 등은 이 영화의 부분이면서 단조로울 수 있는 스토리를 신비스럽게 만들어준다. 어쩌면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를 반복하는 삶의 뼈대는 단조롭기 그지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의 무수한 삶의 빛깔들, 그 빛깔들이 모여 인생이라는 거대한 양탄자를 직조하는 것은 아닐는지. 그 양탄자 위에는 누군가의 기다림이라는 무수한 발자국이 찍혀있다.

기다리면 사랑이 올까요

기다림의 간절함과 허망함, 따뜻한 슬픔을 그리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장예모 감독의 '5일의 마중'(2014)이다. 소설 「범죄자 루옌스」를 각색해 영화화한 '5일의 마중'은 중국 문화혁명이 남긴 개인의 상처와 가족의 위기, 기다림과 사랑의 의미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교수 루옌스(진도명 분)는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간다. 잠시 탈출에 성공했으나 딸의 밀고로 체포돼 오랜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루옌스는 20년 만에 출소해 아내 펑완위(공리 분)를 찾아온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는 남편이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탈출해 집에 찾아왔을 때 문을 열어주지 못했던 죄책감과 함께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서 체포되던 충격으로 인해 심인성기억장애를 앓게된 것이다. 아내 펑완위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남편 루옌스가 붙잡히기 전 남긴 "5일에 집에 간다"는 편지다. 그래서 그녀는 매달 5일이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간다. 

남편 루옌스는 출소 후 아내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그녀가 기억할만한 것들을 재현보고자 한다. 의사가 설명한 데자뷔 현상을 믿어보기로한 것이다. 둘의 추억이 묻어 있는 장소나 행위, 음악, 책 등이 그녀의 기억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면서. 루옌스는 피아노 수리공으로 위장해 피아노를 조율하고 아내에게 그 옛날의 곡을 들려주기도 한다. 아내는 피아노곡은 기억하나 남편을 알아보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루옌스는 계속해서 수용소에서 아내와 딸에게 보낸 편지를 하나씩 읽어준다. 마찬가지로 그녀는 편지를 읽어주는 이 사람이 그녀가 그토록 기다리던 남편임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루를 공산당 간부로 오인해 저항하기도 한다. 남편은 할 수 없이 제3의 남자로, 그녀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매달 5일이면 그녀와 함께 기차역으로 가 그녀의 남편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이날도 어김없이 휠체어에 몸을 실은 아내 펑완위는 남편을 기다린다. 팻말은 루가 들고 있다. 기차역의 철문이 쾅하고 닫히는데도 펑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는 루의 표정도 그리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그녀의 변함없는 사랑을 알기에 아마 죽는 날까지 그녀 옆에 그대로 있기로 결심한 듯 꼿꼿하다. 그녀의 기억은 되돌아올 수 있을까.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그들만의 슬프고도 애틋한 사랑을 쓰다듬고 있다. 

기다림이 아픈 것만은 아니다. 영화 '가베'에서 가베는 기다림의 시간만큼 자유를 찾을 용기를 얻었다. '5일의 마중'에서 펑완위는 남편을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웃집 남자가 아프다고 하자 만둣국을 끓여 탁자 위에 올려놓고 그의 아픈 등을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남편을 기다린다. 그녀에게 사랑은 돌아오지 않았으나 사랑은 그 옆에 있다. 기다림의 대가는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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