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공동체를 엿보다 10. '해녀' 다시 읽기

신사임당 현모양처에서 주체성 지킨 여인상으로
1980년대 까지 '억척스럽고 강인한'이미지 부각
자원 재생·소통 중심 '지속가능성 유지'에 주목

지난해 문화계 최대이슈로 떠오른 젠더와 페니미즘의 영향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영향을 미쳤다. '펙트 체크'도 한 몫했다. 올 초 불었던 신사임당 신드롬의 진원이다. 현모양처 아닌, 한 여인으로 신씨를 조명했더니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아직 우리가 제주해녀에게 찾아내지 못한 것도 그 것일지 모른다.

△ '워킹맘'의 산모델

신사임당이 '워킹맘'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찌됐든 '현모양처', 전통적 어머니상으로 존경받아온 신사임당의 신화가 흔들렸음은 분명하다. 적어도 남성 중심 유교 사회에서 주체성을 잃지 않은 여인상이다. 기록들을 보면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에는 현모양처로 묘사되다가 일제강점기 들어서는 가정을 지키며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는 '총후(銃後) 부인'으로까지 왜곡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임당'이 이름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시작해 '현모양처'라는 개념이 일본 군국주의가 낳은 근대 여성상이라는 펙트만 확인해도 신사임당에 대한 접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직 율곡 이이의 어머니만이 아니었던(신사임당은 슬하에 4남 3녀를 뒀다) 그가 여성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이름을 스스로 만들어 부른 것은 분명 의미 있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지만 자식들에게 '입지(立志)'를 강조하고 각자의 소질을 계발하도록 했던 지혜도 가진 여성이었다.

제주 해녀 역시 이런 각색에서 자유롭지 않다. 포작 등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으니 억척스런 우리네 어머니로 그들에 대한 평가를 한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아직까지 해양수산업 영역의 잠수어업인으로 보는 데도 변화가 주문되고 있다. 분명 1970·80년대까지 제주해녀는 산업역군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대일 수산업 수출에 있어 소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고, 그 상당 부분을 해녀가 책임졌다.

하지만 해녀를 보는 상당수의 시선을 그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시는 산업화 바람이 뜨거웠던 때였다. 해녀만이 아니라 '억척스럽고 강인한'모델이 필요했다.

당시 한 중앙지가 연재했던 '땀 흘리는 한국인' 시리즈에서 광부에 이어 해녀가 다뤄졌다는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어려운 여건을 감수하며 이겨내는 여성 노동자의 모습만 부각되면서 그들이 지니고 있는 공동체 문화와 삼무·해민정신 등 제주 정체성에서의 역할은 자연히 약해지게 됐다.

△인큐베이터 역할 '불턱'

'대물림'에 대한 해석도 편파적이다. 힘든 일을 일부러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은 어느 직업군에서건 마찬가지였다.

1980년대까지만 히도 극소수를 제외하곤 모두가 엇비슷하게 가난했던 시절을 겪었고, 고도성장 궤도에 올랐던 시절을 거치며 '개천에서 난 용'을 목도한다. 경제성장과 함께 고학력 전문 인력의 수요가 대폭 늘어나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 기회도 많았다. 바다는 그 기회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해녀는 산업 현장에서도 주체였다는 점이다. 매일 새로운 문제와 변화에 부딪히면서도 오래 이어진 민속지식 등을 바탕으로 해법을 찾았고 망사리를 채워 가계를 지탱했다. 맨 몸으로 부딪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고 끝내 역할을 해내는 과정은 성공한 스타트업의 스토리 이상이다. 지침서 같은 것은 없지만 해녀 개개인의 경험과 통찰이 쌓인 '불턱'은 다시 바다에 도전하는 이의 길라잡이가 되고, 두려움과 고단함을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닌 현장 경험만큼 더 생생하고 사례 적용이 쉬운 것은 없다.

농사지을 땅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바다 밭을 개간하는 대안을 찾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바다 속에 거침없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1인 기업인으로 자식농사를 짓고, 가정경제를 일궈냈던 이들에게 '경영인'의 명함을 허락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UN환경협약 이후 탄소가스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게 됐다. 자연에 지속가능한 여건을 마련해 줄 때 자원이 남고 기업도 영속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세계 각국이 손가락을 걸었다. 민회 형태의 잠수회가 만든 자체 규약은 이니 '자원 재생이 가능하도록 배려하는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기업들에서 중요시 하는 소통(커뮤니케이션) 문제 역시 푼 지 오래다.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의 상당 부분이 공유절차가 생략된 채 결과에만 집중되거나 단순히 결론만 전달 받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달리 해녀 사회의 의사결정 방식은 공유·공감에 우선순위를 둔다.

험난한 물질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뒤로 미루지 않는다. 간혹 욕심이 앞선 '초과근무'로 목숨까지 잃는 일이 생겨나지만 해녀들에 대한 인식이나 사회적 처우가 달라진다면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다. 

신규 해녀의 양성 역시 이런 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적은 위험, 큰 대가'를 제공하는 일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굳이 경제적 보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의 힘듦을 인정하고 각자가 처한 조건에 맞춘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해녀 리더십을 먼저 살펴야 한다. 

올 1월 1일부터 변경, 우리나라 어업 분야 첫 도전 부처 의견 조율도
31일 해수부 중심 자문회의…기존 생산 시스템과 연관성 등 적극검토


'제주해녀어업'이 우리나라 어업유산 중 처음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동아시아농업유산학회(ERAHS)를 통한 사전 검증을 거치는 등 환경 친화·생물다양성 등 지속가능한 생업 및 문화 전승·보전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31일 제주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중앙부처와 학회 관계자 등과 더불어 최근 중국 절강성 호주시에서 열린 제4회 동아시아농업유산학회(ERAHS) 포럼 등에 참석해 어업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제주해녀어업의 FAO(세계식량농업기구)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 등재를 추진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현재 농업 분야에만 4개 종목이 등재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기는 하지만 올 1월 1일부터 GIHAS 선정 기준과 신청 양식이 변경, 체계화되는 등 새로운 기준 적용에 있어 '제주해녀어업'이 사실상 선봉에 서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를 위해 해수부를 중심으로 31일 자문회의가 진행되는 등 가속이 기대되고 있다.

FAO는 GIAHS 선정 취지를 공고히 하고 체계화한 운영을 위해 지난해부터 과학 자문 그룹을 통해 GIAHS 선정 기준 및 신청 양식을 검토해 왔다. 새 기준을 통한 인증 심의가 지난 2월 진행됐다.

개정된 기준은 연속성을 중시하는 점에서는 기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생물다양성'을 '농업 생물다양성'으로 바꾸고 농업 시스템과의 관련성에 무게를 두는 것으로 조정했다. 여기서 농업은 임업과 어업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실제 해안선 등 시스 케이프(seascapes)가 항목에 포함됐다. 이밖에도 문화와 사회 조직에 대해서도 동일 단순히 축제와 음식 문화가 있다는 것만 아니라 농업 시스템과 관련성 여부를 평가한다.

도 관계자는 "기존 신청서가 제출된 지자체가 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해녀어업 신청에 있어 부처간 조율이 이뤄지는 등 기대가 높다"며 "ERAHS를 통해 사전 검증을 받는 등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동아시아 농업 유산 학회(ERAHS)는 2013 년부터 일본, 중국, 한국의 3개국에서 매년 돌아가면서 개최하고 있다. 순수 학술대회에서 최근에는 각국의 GIAHS 사이트, NIAHS(국가 수준의 농업 유산) 사이트 간의 교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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