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문 바깥의 양쪽 하구 연안에는 희끗희끗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서쪽 어귀의 물 빠진 갯벌에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떼들처럼 모여 있다. 그 수가 얼른 헤아려도 수백, 아니 천 명도 더 될 것 같다. 나는 곁에 와 칭얼거리고 있는 내 안내원에게 저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이 근방 마을의 사람들이 대합과 피조개 등 조개를 잡으러 나온 것이라고 했다. 깡깡 언 저 바다에 얼마나 굶주렸으면 저 무리의 사람들이라니. 그들을 생각하자 가슴이 다 옹송그라졌다.

"조개란 놈은 얼마나 번식력과 이동이 빠른지 아무리 잡아도 이튿날 그 자리엘 가 보면 또 그만큼 있다."고 나의 안내원은 궁금해하는 내게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그러나 조개가 많으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조개의 수보다 사람의 숱자가 더 많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12시 예인선이 도착해서, 오후 3시에 갑문에 도착하고, 거기서도 한참이나 기다려서야 갑문이 열렸다. 지성호, 구룡호, 이런 북한의 화물선들이 갑문을 빠져 나오고 나서 우리 배가 갑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갑문 안의 수위가 강물과 같아질 때를 기다리는 동안 강상을 바라보니까 수면이 꽁꽁 얼어 있다. 바다에서도 더러 얼음 덩어리들을 보아왔으나 얼어붙은 강물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라 놀라움이 컸다.

갑문의 수위가 강의 수면과 같아지고, 우리가 탄 배는 드디어 얼음이 언 대동강 수면을 헤치고 스로우로 전진해 나간다.

땅, 따당 땅. 따당땅 땅.

제주 사랑의 귤을 실은 배가 언 대동강 물을 시원스럽게 헤치며 나아간다. 통일의 새로운 장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다. 언젠가 통일은 될 것이고, 그때 오늘의 일은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이 순간의 감개무량함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나는 뱃전에 기대어서 하염없이 깨어져 나가는 두께 10센티나 될 얼음 조각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다섯 시, 남포 부두 도착. 우리의 선석 옆에 5,000톤이나 될 미국 배 어드벤테이지호가 닻을 내리고, 싣고 온 물건들을 내리고 있다. 안내원들이 "미국놈들이 쌀을 싣고 왔다."고 했으나 나중 가까이서 확인한 결과 밀가루 같았다.

배는 선석에 닿은 다음에도 세관원들 한 무리가 달겨들어서 우리들의 가방뿐 아니라 선실들도 모두 뒤지는 것이었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우리들은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이렇게 한바탕 북새를 치르고 나서야 우리는 드디어 북한측 민족화해협의회의 대표들에게 인계 되었다. 나중 식사 자리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깡마른 전형적인 북한 사람 타입의 사람이 양운봉, 그보다 약간 젊으면서 배까지 나온 사람이 김봉철로 그들 평양에서 나온 사람들은 우리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일거수일투족 우리와 함께 했다. 처음 우리를 안내하기 위하여 나갔던 사람들이 계속 우리와 함께 할 줄 알았던 것은 오해였다. 벌써 세 단계째 그들은 사람을 바꿔 우리를 안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양 넘버의 승용차 두 대를 가지고 나온 그들은 우리의 짐들도 옮겨 싣고 항만기중기들이 작업을 벌이고 있는 저물녘 철로길을 벗어나 불과 몇백 미터 밖에 안 되는 외국인선원구락부로 우리를 날라다 놓았다. 우리로 치면 장급여관 정도의 이층집. 일층은 당구대가 하나 있고, 그 안쪽은토산품 코너이며, 이층은 숙소이다.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7시. 30분 후에 그들이 저녁 초대인 '공동식사'를 하자고 한다. 식사 장소는 숙소 한 구석의 작은 연회장. 여장을 풀 새도 없이 얼굴에 물을 찍어 바르고 저녁 장소로 가 보니까 그들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도 맨 먼저 눈에 띄는 건 들쭉술과 맥주였다. 반찬도 여러 가지가 아주 정갈한데, 특히 신 김치의 맛은 그만이었다. 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그들은 어떻게든 우리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려고 들고, 우리들은 피하려고 하는 실랑이가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때쯤인 아홉시께 우리들은 다시 그들의 안내로 배가 있는 현장으로 가 보았다. 화물선은 이미 선창을 드러내고, 인부들이 달라붙어서 기중기에 귤 상자를 올려 놓으면 기중기가 선회하여 그것들을 무개차에 싣고, 무개차는 그것들을 바로 옆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 안으로 날라가고 있었다. 그 인양작업이 대단히 익숙해서 이런 속도이면 몇 시간 안에 감귤을 다 부릴 것 같았다.

주변의 건물 벽에는 주체사상을 부추기는 붉은글씨의 표어들이 너저분하게 내걸려 있었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위대한 김일성 원수는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내용이었다. 그가 신격화 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으나 그들의 이런 표어를 직접 대하자 실소가 나왔다.

방으로 들어가서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놓고 지난 닷새 동안 입고 자고, 입고 돌아다니던 껍질을 벗어버리고 몸을 담갔다. 그러나 이곳 숙소의 물사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푹 몸을 담그고 앉아 있을 형편은 아니었다. 우리는 아침 저녁 맘대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은총만으로도 마땅히 이 땅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하리라. 잠자리 침대는 그리 불편한 편이 아니었으나 그러나 여러 날 잠을 못잔 눈에도 얼른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새 뒤채었다. 게다가 정전이 되면 바닥의 물 공급이 끊기면서 와상와상 와상, 무슨 파충류들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로 계속><오성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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