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에른스트 블로흐 「희망의 원리」

국내외를 막론하고 '코로나 19'라는 정체불명의 질병이 갈수록 확산하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두려움과 절망감이 더욱 심해져 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유령이 우리 사이를 활보하고 있지만, 그 정체가 무엇인지 처방법이 무엇인지 오리무중이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기

지난 세기 초반에 공산주의와 파시즘의 망령이 나돌았듯이, 지금 '코로나 19'라는 질병은 분명히 하나의 새로운 유령이다. 그것은 기술적 물질적 삶의 가치에 매달려 오직 생산과 소비에 골몰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이다. 과학과 자본의 일부로 전락하거나 수동화되어 생기를 잃고 감정도 메말라 가는 인간에 대한 경고의 유령이다. 현재 우리에게 더욱 불길하게 여겨지는 것은 만연하는 질병 그 자체도 두려운 일이지만, 인간이 삶의 행로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해 버린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과연 이 질병의 유령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지구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올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과학자의 진단이다. 

아무리 그럴지라도, 지금 우리가 무엇보다 할 일은 보다 나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는 일이다. 참담한 일이지만 우리가 미래의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어떤 대책도 목표도 없다. 다행히 거의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주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키워내었다. 중세 때 페스트라는 끔찍한 질병이 유럽 전체를 휩쓸고 지나가고, 세계대전이 두 번씩이나 지구를 폐허로 만들어도 기적같이 살아남았다. 

인간은 아무리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의 꿈을 꾸어 왔고, 그래서 더 나은 삶을 일구어 왔다. 잠시의 시간이 지났을 뿐이지만, 희망을 이야기하던 시간이 엄청나게 지나가 버린 듯 아득하기만 하다. 절망의 골이 아무리 깊은 현실에서도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희망이란 언덕뿐이다. 그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품고 있는 희망을 믿고 인내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용기이다. 

희망은 삶의 본질적 원리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랑'만큼 익숙한 말이지만, 그에 담긴 깊은 친숙성은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힘겨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희망'이야말로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와 주술 같은 힘을 주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말은 절망적이고 암울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한 새로운 열정을 환기시켜 준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절망과 어둠의 끝에 희망과 빛이 존재할 수 없다면, 인간의 삶은 결코 영위될 수 없을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이야기한 철학자와 작가들은 수없이 많다.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난해한 철학적 에세이 「희망의 원리」에서 '희망'을 삶의 본질적 '원리'로 제시한다. 블로흐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미처 완성되지 않은 세계의 생산물이고, 그러한 세계의 미완결성은 희망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해석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우리를 창조하고 파괴할 것인가? 이런 근원적 질문에 대해 많은 사람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맞이하는 삶의 두려움과 공포는 '희망을 배우는 일'로부터 극복된다고 블로흐는 말한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면 안 되는 것은 희망의 끈이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시련과 절망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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