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피오나 스태퍼드 「길고 긴 나무의 삶」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온갖 꽃으로 찬란하던 산과 들에도 신록의 나무가 가득하다. 푸른 나무들과 인생살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산책길은 자꾸 수다스러워진다.   

지구에서 잠시 살다 떠나는 유한한 생명이라는 점에서 나무와 인간은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저 나무에게 나는 어떤 존재로 보일까. 숲에서 함께 지내는 나뭇잎들이나 새들보다는 훨씬 재미없고 반갑지 못한 이웃이 아닐까. 남루하고 지친 내 모습에 비해 나무는 언제나 푸르고 당당하다. 

봄날 벚꽃 향연을 보러 가던 시절의 벚나무, 옛 노래 가사에 등장해서 이별하는 정인(情人) 대신 울어주던 수양버들, 어린 시절 크레파스를 쥐고 그리던 사과나무, 저 나무들은 우리가 죽고 난 이후에도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 곁에 이런 존재가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가. 우리는 나무에서 불멸의 위안을 받는다. 나무는 인간에게 기대지 않지만, 인간은 나무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에 기대어 살아간다. 

기나긴 세월 동안 인류와 함께해 온 나무들은 일상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피오나 스태퍼드의 「길고 긴 나무의 삶」은 '길고 긴 나무의 삶'을 문학, 신화, 예술에서 읽어내는 나무 이야기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나무는 총 열일곱 가지이지만, 인간처럼 나무들도 애절한 사연 없는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무는 어제에 매달려 오늘을 그릇되게 살지도 않고,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망치지도 않는다. 인간들이 보란 듯이 쑥쑥 자라면서 진짜 인내와 헌신이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나무가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라. 나무는 질투도 갈등도 없이, 불필요한 일과 무의미한 관계에 얽힘도 없이 안분지족하면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 

생각해 보면, 인간처럼 시간에 쫓기면서 세상과 불화하면서 살아가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자리를 든든하게 버티면서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면서 세상을 일구었다.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생명체이자 그 무엇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현명하고 지혜롭게 살아 내는 존재다. 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늘 우리 곁에 머물며 평안과 휴식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는 나무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다.

오직 한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기막힌 숙명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나무를 보면 그 인내와 엄숙에 절로 머리가 숙어진다. 나이테가 촘촘해질수록 제 속을 비우면서 다른 생명체들을 품어 안는 나무처럼, 그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살다가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처럼, 살 수 없는 것인가. 뿌리 깊은 나무는 오늘도 부대끼고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좀 더 경건하게 좀 더 아름답게 살라고 일러준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