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를 향유하다 12. 가파도 아기 해녀 ④

해녀 공동체 '세대이음' 일반 기준과 달라
불턱, 일상 공유·소통·공감 통한 협의 공간
단순한 도구 아닌 연결고리 테왁 장치 활용
"해녀에게 정년이 있나요" "왜 해녀가 되기 힘들어요" 가장 많이 듣는, 또 그만큼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기도 하다. 일반의 기준으로 해녀 공동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법정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년은 우리나라 정년은 만 60세지만, 적어도 평균 67세까지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다. 해녀에게 이 기준을 적용하면 단 번에 '무슨 소리냐'는 벼락이 떨어진다. 현재 물질을 하는 해녀 중 절반은 바다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 해녀 수 감소 그리고 고령화
제주 해녀에 대한 접근 방식 중 어쩌면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해녀 수를 헤아리는 것이다. 제주 해녀 수는 지난해 3820명이다. 2018년(3898명)에 비해 2%(78명) 줄었다. 이미 50년 전인 1970년대 1만4000여명이란 숫자를 들추고, 1980년대 7800여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흐름을 짚는다. 그 사이 세상이 변했으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부분은 있다. 다만 신경 써 살펴야 할 것은 '고령화'다. 이미 해녀의 절반 이상이 70세를 넘겼을 정도의 상황은 세월이 그렇다는 말로 넘기기 어렵다. 그 와중에 조금씩이지만 신규 해녀가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여기에 나이가 어떻고는 큰 의미가 없다. 해녀로 살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또 하나 해녀 수가 줄어드는 것은 4면이 바다인 제주에서 전체 어업 위축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살필 필요가 있다. 도내 어업종사자 등 제주 해녀 비중은 전체 80%가 넘는다. 해녀 수가 지금의 4배나 됐던 1970년대 40%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껏 꾸준히 제주 바다를 지킨 해녀의 역할과 배경을 신경써 읽어야 한다.
그리고 '불턱'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다. 해녀의 정년은 '불턱'이 정한다. 물질을 할 때는 물론이고 일상을 공유하면서 요즘 건강 상태는 어떤지, 심적으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를 살펴 '쉴 것'을 권한다. 서로 목숨을 의지하는 공동작업의 바탕에는 오랜 세월을 통해 축적한 '동의'가 있다.
△공동체문화의 중심 '불턱'
'세계에서 유래가 드문 여성 중심의 해양 공동체 문화'를 상징하는 것을 묻는 질문에 불턱이란 답은 최소 1·2순위 안에 나온다.
불턱은 힘든 바다 작업을 하는 해녀들에게 '안식'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바다에 나가기 전 마음을 다잡고 채비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물질을 마치고 숨을 돌리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감을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제주해녀문화'가 지속 가능했던 이유가 숨겨져 있기도 했다.
생각해보자. 굳이 여성이라 한정하지 않더라도 셋 이상 모이면 그중에 '스승'을 찾을 수도 있지만 갈등이나 시기 같은 잡음이 안 생길 리 없다.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둘 이상 짝을 이뤄야 하는 작업에 이런 분란은 화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도 욕심에 물숨을 놓칠지언정 동료로 인해 피해가 생겼다는 얘기는 나온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불턱은 일반적인 사회 규범보다 해녀들만의 규약이 우선되는 공간이다. 지금은 현대식 탈의실로 바뀌긴 했지만 해녀들은 아직도 공동의 시간을 나누는 것으로 고단한 일의 피로며 힘든 사정을 덜어낸다. 그 의미를 알게 됐다는 것은 '해녀'가 됐다는 것과 진배없다.
유용예 해녀 주도로 가파도에서 꾸려진 '홈커밍'은 이런 불턱에서 착안했다. 그리고 '전승'이라는 과제와 연결된다.
△숨비하며 오가는 생
본행사는 우여곡절 끝에 11월 열렸지만 준비작업은 연초부터 진행됐다. 지난해 1월 25일과 26일 낮은 섬 가파도 해녀 워크숍을 연결한 '가파도 AiR 프로젝트 : Dear Island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가파도 해녀와 법환 해녀학교 출신 예비 해녀들이 마을 강당에 모였다. 그리고 테왁과 망사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깊은 물 속까지 숨비 하며 오가는 동안 '생(生)'을 의지하는 태왁은 세대이음의 도구로 유용하게 활용됐다.
해녀들은 테왁에 닻 돌을 매달아 물 속 돌 틈 사이 고정시키고, 망사리에는 수확물을 보관한다. 함께 숨비 하는 물벗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거리를 알리는 신호이자 또 가까이 지나는 어선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부표 역할을 한다.
해녀들에게는 중요한 도구지만 생필품 매장이나 대형 마트, 심지어 전통시장에서도 구할 수가 없다. 물질 기술처럼 어머니로부터, 어머니는 그 어머니에게서 배우고 익혔다.
또 하나 해녀 문화 속에 개성이란 것이 적극 반영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해녀문화는 환경과 장소, 전승 방법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테왁과 망사리는 지역에 해녀 개개인의 개성과 취향이 반영된다. 직접 손으로 직조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더하고, 살아오며 쌓은 지혜를 더한다. 이 과정은 대부분 불턱에서 이뤄졌다. 예전처럼 바닷바람을 등지고 앉아 할 이유는 없지만 한데 모여서 작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실현에 옮겼다. 테왁과 망사리 매듭을 하나하나 엮으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