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죽음의 수용소에서」

철학자 니체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니체의 이 말은 삶의 의미와 목표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또한 코로나 시대의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준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생사의 엇갈림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잃지 않고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준 자서전적인 체험 수기이다. 작가는 잔인한 죽음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보낸 기나긴 죄수 생활로 자신의 벌거벗은 육체적 실존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 형제 아내가 강제수용소에서 모두 죽고, 모든 소유물을 빼앗기고 모든 가치를 파멸 당한 채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 그리고 핍박 속에 몰려오는 죽음의 고통과 공포를 어떻게 견뎌냈으며,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발견하고 유지할 수 있었을까?

'고통'에도 의미가 있을까. 고통은 우리가 무조건 피하고자 하는 부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빅터 프랭클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는 고통은 삶에 깊은 의미를 더해줄 기회라고 주장한다. 고통과 마주하고 그것 앞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우리는 또 다른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여긴다. 적극적인 삶은 고통과 공포 속에서도 생산적인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인간에게 부여한다. 

환경은 인간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불행과 행복에 대한 최종적 선택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환경이 사람을 굴복시킬 수 없으며 삶은 궁극적으로 본인이 선택하고 결정한다. 삶의 의미는 기쁨과 즐거움뿐만 아니라 고통과 시련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빅터 프랭클는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존재가 가장 어려운 순간에 있을 때, 그를 구원해 주는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기대"라는 것이다. 반대로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는 사람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우리의 책임은 너무나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책임감은 바로 인간존재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책임감은 내가 정말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며 살아가는 가운데서 추상적 삶의 의미가 아닌 구체적 과제를 수행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 실존의 터전이 마련된다. 프랭클은 말한다.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지금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잘못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갈수록 어둡고 힘들어가는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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