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파농 「검은 피부 하얀 가면」
인간의 폭력과 증오는 끝이 없다. 그로 인해 지구 곳곳에서는 사람과 사람, 종족과 종족,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과 분쟁이 이어진다. 최근 아프카니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탈레반의 무자비한 폭력은 이런 정황을 잘 보여준다. 비단 이런 현상이 후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도 오늘날까지 흑백의 인종차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흑백논리는 모든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려 하는 편중된 사고방식을 뜻한다. 모든 것을 흑과 백, 선과 악, 아군과 적군의 양 극단으로 나누어 놓고,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고 경계를 지우는 방식이다. 흑백논리는 양 극단 이외의 중간 지점을 허용하지 않으며, 중립이나 중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따라서 흑백논리를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을 적으로 간주하여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다.
프란츠 파농은 프랑스령(領) 마르티니크 태생의 평론가·정신분석학자·사회철학자로서 알제리의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의 흑인들 모습을 고통스럽게 투사한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노예로 전락한 흑인들의 모습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형상화한다.
흑인의 경제력과 문화수준이 갈수록 높아가며 거의 미국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흑인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은 미국이다. 흑인은 형식적으로는 미국 시민이지만 그 인권은 침해당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여전히 다른 종족이라는 차별을 당한다. 인구 분포로 볼 때에도 흑인은 저수입, 높은 실업률,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과 갈등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그 중심에 프란츠 파농이 있었다.
노예해방전쟁이 있은 이래로 현재까지 흑인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기 위해 백인과 동일한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인들과 달리 흑인들은 오직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박해당하고, 백인들은 '하얀 가면'을 쓰고 이를 바라보고 있다. 백인의 눈에는 흑인을 위시한 유색인종이 모두 편견과 멸시의 대상일 것이 아닌가.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은 흑인의 정체성 문제를 심리학의 차원에서 분석한다. "자기의 정체성을 규정함에 있어서 온전한 백인이 되지도 못하고, 온전한 흑인이 되지도 못하는 상황"을 고발한 이 책에는 백인 세계에 갇힌 흑인들을 위시한 유색인종들의 아픔과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란츠 파농은 알제리 폭력 사건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자본이나 제국주의로부터 착취를 당할수록 민중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인간에게는 강자로부터 수직폭력을 당할수록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려는 수평폭력 심리가 있다."라는 독특한 폭력론을 내세웠다. 그리하여 인간의 폭력은 세계 도처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전쟁과 인종차별 같은 이 지구상의 모든 갈등은 결국 인간주의의 상실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고 하지만, 인간과 집단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면 어찌 오늘날같이 비인간적인 폭력과 전쟁이 끝없이 반복될 것인가.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인종과 민족, 국가와 종교의 차이를 초월하여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생각하는 인간주의의 정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