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로버트 프로스트 「눈 오는 밤 숲속에 머물며」

밤새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린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쉼없이 내린다. 마당에도, 시든 나무 위에도, 내 마음 속에도 눈은 자꾸 쌓여간다.  

함박눈이 분분히 날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이 온통 고요와 평화에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 내리는 밤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저렇게 찬란하고 아름답고 순정하게 내리는 눈을 내버려 두고 어찌 혼자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눈을 바라보면서 시인 김수영은 "눈은 살아 있다/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라고 노래했다. 

난로가에 앉아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오는 밤 숲속에 머물며」를 읽어본다. 시인은 그믐달 눈 내리는 숲을 지나다가 발길을 멈춘다. 눈 오는 밤의 숲은 너무 아름다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숲은 깊고 어둡고 아름답다. 그곳에서 시인은 노래한다.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시인은 눈 내리는 밤, 남모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해본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 세상에는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소리와 눈 내리는 소리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아무도 몰래 홀로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고요한 풍경에 빠져 본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항상 힘들고 어둡지만, 자연은 언제나 밝고 경건하다. 

눈내리는 숲은 깊고 아름답다. 하지만 시인은 세상과의 약속을 떠올리고 "잠들기 전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길을 나선다. 삶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은 너무 많다. 친구나 연인들과 지켜야 할 약속에서부터 나 자신과 삶에 대한 의무 같은 거창한 약속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약속에 이끌리면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인간은 의식주의 해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잠들기 전에 아직도 더 먼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은 인생길에서 지켜야 할 약속이 그만큼 많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와의 약속만 이야기하고 싶다

밤새 눈 내리는 풍경을 누군가에게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순백으로 쌓여가는 눈을 보고 있으면 축복 · 기쁨 · 사랑 · 고요 · 용서와 같은 단어들이 떠오른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관심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이렇게 인간을 감동하게 하고 기쁘게 한다. 세상을 따뜻이 덮어주듯 펑펑 내리는 눈송이는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를 감싸 안아주는 어머니의 손길 같다. 멀리서 온 즐겁고 반가운 편지 같은 눈송이들은 겨울 저녁 식탁을 정성스레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만큼 온화하고 정겹다. 

흰 눈 내리는 날은 아이도 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도 없어지길 소망해 본다. 지금 저렇게 밤새 내리는 눈도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거두어들이고자 하는 간곡한 기도의 마음을 간직한 것은 아닌지.

순백의 눈과 함께 지난 한해동안 이 세상과 사람들을 그렇게 힘들게 했던 코로나19라는 질병도 이제 그만 사라져 달라고 빌어본다. 지난 해의 힘들고 아팠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독자 여러분과 가정에도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