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이른바 해묵은 젠더 갈등이 새롭게 심화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이 같은 젠더 갈등은 오래전에 제기되어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서구 페미니즘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1949년 세상에 나온 「제2의 성」과 작가 보부아르를 지금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이 책의 중요성을 다시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 책을 현재로 불러오는 이유는 이 책이야말로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대한 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와 같이 남성들의 권위가 아직도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책들은 '제2의 책'으로 밀려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출판된 후 1주만에 2만2000권이 팔렸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번역되자마자 100만 부가 팔렸다. 그러나 이 책은 가부장적 사회가 갖고 있는 여성관을 거부했다 는 이유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반응들에도 불구하고 「제2의 성」이 '페미니즘의 성서'로 불리게 된 것은, 그동안 여성들이 소외된 성으로 살아온 실상과 이유를 낱낱이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동안 여성은 '타자'이고 남성의 예속물이었다. 보부아르는 여성이 그동안 '제2의 성'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한다. 세상과 인식의 주체는 남성이고 여성은 주체인 남성의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타자가 되었다. 타자란 스스로가 주체가 되지 못하며 부차적인 의미를 갖는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남성이나 남성다움은 규범으로 세워지고 여성이나 여성다움은 부정적인 것, 비규범적인 것, 즉 타자로 간주된다. 여성은 남성과의 관련 하에서만 존재하는 비본질적이며 부차적인 존재이다. 남성은 주관이고 절대적인 존재인 반면 여성은 의존적인 타자인 것이다.
보부아르의 독특함은 주체와 타자 개념을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증명하는 데 사용하였다는 점에 있고, 자신의 철학을 여성 억압의 문제에 적용했다는 데에 중요성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제2의 성」은 타자의 정치와 주체의 정치를 실천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자의 정치는 타자화된 존재들을 공공의 장으로 불러오는 것이고, 주체의 정치는 타자화된 존재들이 주체로 설 수 있는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보부아르의 유명한 말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 주장은, 여성이 여성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던 통념을 깬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여자와 남자는 신체적이고 생리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다르며 이러한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라는 통념을 깬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기 때문에 여자는 여자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는 통념을 보부아르는 파괴하고자 한 것이다. 더 나아가 여자가 '제2의 성'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물학적 결정론에서 찾는 논리를 철저히 비판한 것이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이 '타자'이기를 그만두고 싶다면 상황의 세력을 극복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고 스스로 그러한 변화의 선봉대원이 되어야 하며, 사회 변혁을 향하여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부아르의 이야기대로 여성이 진정한 사회적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스스로 주체적 인간이 되어야 하며, 그 때에야 진정한 '여성'으로 설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