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오래전 그리스의 에피다우로스 극장을 방문 했을 때, 고대 그리스의 삼대 비극작가 중의 한 사람인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을 본 적이 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원형경기장 주변에서 이루어지던 빛과 어둠의 절묘한 조화와 결합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원형경기장 주위는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고 무대가 설치되어있는 공연장의 한가운데에서 빛은 명멸했다. 파국을 향해가는 오이디푸스의 몸짓 하나하나에서 빛과 어둠은 혼효하며 대립하고 있었다.
성서와 신화 속의 수많은 인물은 빛과 어둠을 오가며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을 향하여 절규한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다. 빛이 강렬할수록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은 더욱 빛난다. 빛은 어둠을 덮지 못하고, 어둠도 빛에 굴복하지 않는다. 오이디푸스의 비극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오이디푸스는 '부은 발'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은 발'은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추방되어 영원히 방랑의 길을 걷도록 규정 지워진 인간 존재의 숙명적 운명을 표상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신으로부터 점지된 신탁으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후에 왕비인 어머니와 결혼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찔러 어둠 속에 빠지게 된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전복되는 존재이다. 스핑크스를 무찌르고 테베의 왕위에 오를 때의 오이디푸스는 영웅이며 현자로서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는 존재이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운명을 만나러 가는 존재이다. 그는 어둠을 피하기 위해 어둠을 떠나고자 하지만 다시 어둠 속에 갇히게 되고, 수수께끼를 풀지만 다시 수수께끼가 되는 인물이다. 오이디푸스는 빛을 찾아가지만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빛은 어둠으로 변해 버린다.
그는 어둠에서 나오지만 다시 어둠 속에 갇히게 된다. 오이디푸스가 찾는 빛은 어떤 방향도 위치도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재현 불가능한 해석과 깊이는 이미 올바른 해석과 깊이가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여전히 어둡고 깊은 질문 속에 남아 있다. 그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답했지만 그에게 질문은 계속된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빛과 어둠, 영혼과 육체, 존재와 부재라는 이분법적인 대립항 속에서 조화와 종합에 이르기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빛을 거부한 오이디푸스가 눈을 잃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길을 떠나는 거와 같이, 사람은 기존의 것에 대해 위반하고 전복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오이디푸스는 눈뜬 자일 때, 오만하고 많은 것을 알고 있었으나 진짜 자기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스스로 눈먼 자가 된다. 진짜 자신을 아는 자야말로 진정하게 이 세상과 인생을 아는 자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칠흑 같은 밤길을 헤쳐 나가 마침내 멀고 고달픈 삶의 길에 당도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눈을 감은 채 이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고 있다. 눈먼 그대, 눈을 떠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