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주변에서 많은 것들이 떠나간다. 떠나가는 시간, 떠나가는 사람, 사라지는 물건들이 가뭇없이 우리 곁에서 자꾸 없어져 간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젊음의 시간도 흘러가고, 영원을 다짐하던 사람들도 우리 곁을 떠나고, 오랜 세월 동안 손때 묻은 물건들도 그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모든 것들과 헤어지면서 우리는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만남의 시간을 멀리하며 한 시절을 다 하고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 모든 소멸하는 생명과 사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속수무책으로 무화(無化)된다. 떠나는 것이 단순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작별이라는 생각이 들고, 이 헤어짐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사라지는 것들, 흘러가는 시간, 이별하는 사람, 버려지는 물건들은 모두 한때나마 지상에서 가장 찬란하게 소중했던 존재들이다.
영원을 약속하던 사람도 떠나고,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소중하던 생명도 지금 어느 병상에서 숨을 거두어가고, 배달된 조간신문에 실린 떠들썩한 이야기도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조용해 질 것이다. 모든 존재와 사물은 저마다 소중한 것이지만 결국 그 생명을 다하고 만다. 떠나는 사람과 생명과 사물은 순식간에 존재에서 부재가 되어버린다.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에 발표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춘의 영원한 필독서로 사랑받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1960년대 말, 기성세대가 이끌어 낸 화려한 고도성장과 새로운 세대가 불러일으킨 저항 문화가 공존했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개인과 사회 사이의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관계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한 청춘의 순간을 그려낸 이 소설은 36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번역 소개되는 등 세계적인 '하루키 붐'을 일으키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학적 성과를 널리 알렸다. 특히 1989년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래 우리나라 출판 사상 최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인공인 와타나베가 친구인 기즈키, 그의 연인이었던 나오코를 비롯하여 청춘의 시간을 거치며 경험하는 상실의 체험은 누구가 겪게 되는 아픔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감정을 함께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과 언어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좇다가 허무한 결말로 끝나고 모두 각자의 길을 떠나고 만다.
우리는 왜 현상만 중요하게 여기고 본질은 쉽게 생각하는가. 눈앞에 보이는 현상과 물질은 그렇게 무겁고 중요하며, 보이지 않는 본질과 정신은 가볍고 하찮은 것인가. 그리하여 사람들은 오직 부질없고 헛된 권력과 물질과 육체를 위해서만 열심히 살아가는 것인가.
「상실의 시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생이란 그런 거예요. 그건 한 번 왔다가 가버린다는 것. 그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시간과 사랑의 기회를 사람들은 너무 쉽게 놓아버리고 만다.
왜 많은 것들이 우리 곁을 떠나가는가? 내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우리는 망연자실하며 슬퍼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상실의 시대'이기 때문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