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여기저기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며칠 사이에 갑자기 봄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겨우내 땅속에서 꿈틀대던 복수초가 돋아나오고 정원에서는 새순과 꽃망울이 움트면서 봄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온 겨울 웅크리고 눈치만 살피고 있던 초록의 새순들이 뽕뽕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 외투를 벗어던지고 봄을 맞이하며 봄의 향기를 맡아본다.
그동안 봄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우리에게 찾아온 것일까. 새롭게 다가온 봄은 살아 움직이면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봄은 햇살 같은 마음을 담고 있다. 양지에 먼저 든 햇살은 개나리 얼굴 위를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개나리는 봄이 왔다는 소식을 먼 곳의 친구들에게 알려주고, 벚꽃, 제비꽃, 물망초, 진달래 같은 친구들이 앞다투어 달려오게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분홍빛 진달래 사랑을 꽃피우며 찬 바람에 얼어붙었던 얼음장 같은 마음을 녹일 것이다.
봄에는 몸과 마음이 풀리면서 멀리 떠나간 것들이 모두 돌아온다. 해빙의 아침이 오면 서운하게 헤어진 사람도 돌아오고, 먼길 떠난 새들도 돌아온다. 모든 것이 처음이 되어 꽃은 꽃으로, 나무는 나무로, 숲은 숲으로 돌아와 새 생명을 숨쉰다.
봄에는 생명이 숨 쉬는 계절이다. 이 세상에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있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봄의 마음을 잊어버리고 생명을 가볍게 생각한다.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부질없는 전쟁이 끝날 줄 모른다.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도 생명의 소중함을 생각지 않는다. 자연계에서 모든 종은 서로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만 유독 인간만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은 다른 생물을 죽고 죽이는 전쟁과 싸움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자연을 예사로이 파괴한다. 이것이 과연 옳은 태도일까. 인간에게 뿐만아니라 다른 생물들에게도 잔혹한 짓을 저지르면서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지구의 자연이 인간만의 것이 아닌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길거리의 들꽃 하나, 하늘에 떠가는 구름 한조각, 스쳐 지나가는 바람 한결이 모두 우리의 친구이며 형제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다면 자연 속의 모든 것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디선가, 우리의 무관심 속에 스러져가는 생명들, 쓸쓸히 홀로 길을 떠나는 누군가에게도 소중한 애정과 연민의 마음을 가질 때, 이 세상은 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공간이 될 것이다.
봄이 우리에게 불어 넣어주는 생명의 기운과 함께 우리의 이웃사랑은 인간을 넘어서 모든 존재에게도 확대되어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인간이 생태계에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죄업에 대한 참회의 몸짓이요 모든 존재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태도이다.
민족시인 윤동주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 나오는 <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봄을 노래한다.
봄이 혈관(血管)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머지않아 뒷산에 진달래가 떼 지어 피고 라일락꽃 향기가 따스한 봄바람에 코끝을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다 간 시인이다. 그가 노래한 <봄>과 같이, 새봄에는 우리 모두에게 생동하는 생명의 축복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