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호철 비상임 논설위원·무이건축 대표소장

최근 일정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단체, 모임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연속이다. 문득 연말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상쾌한 가을의 산들바람이 지나가기 전에 한기가 느껴질 때쯤이면 각종 행사가 몰려든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문득 생각에 빠져든다. 과연 우리는 왜 행사를 갖는 것일까. 그 취지는 행사 식순으로 일부 이해할 수 있다.

행사는 그 단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순서로 진행되지만 일반적으로 인사말부터 경과보고, 기념사, 상패 수여, 비전선포 등 순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에 초점을 두고 행사를 진행한다. 이를 통해, 행사란 한 집단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그간의 성과를 축하하며 구성원 간 협력을 촉진해 정체성과 자부심을 형성하는 자리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의 자신과 주변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집단을 단합 및 고무시켜 조직의 목표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비전과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구성체의 도약을 위한 계기가 된다. 즉, 행사의 목적은 구성체의 과거 성과로부터 자부심과 정체성을 이끌어 내고 현재의 도전과 목표를 달성하며, 조직의 미래 비전과 가치를 공유함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비전공유는 건축분야에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어떤 분야보다도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과 성찰을 갖는 건축인들은 과연 어떤 행사를 준비하며 비전을 공유하고 있을까.

우선 3월에는 건축단체들의 정기총회가 열린다. 총회는 건축적 지식의 향상과 학문적 연구를 통해 건축에 대한 국민의 이해증진과 쾌적한 도시 및 건축환경을 조성하고 건축교육과 국가정책의 개선을 통해 건축문화와 공익에 기여함을 그 중심에 두고 행사를 진행한다.

10월이 되면 제주건축문화제가 열린다. 이 행사는 건축에 대한 도민의 참여와 관심을 유도해 제주건축문화의 확산과 지속적 건축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 및 도민의 단합을 목적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12월에는 제주국제건축포럼이 열린다. 이 행사는 2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로 제주건축문화의 가치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외부 관점에서 점검하고 건축과 도시적 관점에서 세계와 제주가 겪는 공통된 현황을 논의함으로써 제주건축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마련함이 목적이다. 마침 오는 12월 1일 '로컬의 미래: Coloring the Cities'란 주제로 제주국제건축포럼 행사가 열린다.

한편, 이런 제주건축분야의 다양한 비전공유 행사와 더불어 새로운 비전선포의 작은 울림으로 제주대학교 30주년 행사가 열린다. 1993년 학과개설 이래 약 1000여명의 건축전문인을 양성한 제주대학교 건축공학과의 첫 입학생이 이제 지천명의 나이인 50세가 돼 제주건축분야를 지탱하는 굵은 줄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런 결과에는 그간 제주 건축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여러 선배 건축인의 희생이 있었다. 이런 헌신에 대한 보답의 시간으로 지나간 30년간의 세월을 곱씹어 보고 감사의 마음을 표하며, 공공재로서의 건축인으로 도약하기 위해 오는 12월 16일 '새로운 도약 그리고 동행'이란 주제로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30주년 기념행사가 열린다.

어려이 쓰인 과거의 30년에 대한 회상과 새로이 쓰일 미래의 30년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이번 행사를 통해 이후 제주의 건축분야에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될 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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