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망각하는 동물이라 일컬어진다. 우리는 흔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머릿속에 넓은 기억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만큼 많은 사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망각은 인간의 두뇌 활동에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현상으로 어떤 사실을 잊어버림을 말한다. 망각 작용으로 인해 그 어떤 기억도 시간이 지날수록 흐려지며 아예 머릿속에서 잊히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두뇌의 노화로 건망증이 생기면 중요한 일을 놓쳐버려 일상이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난처해하거나 통화를 하면서도 휴대폰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건망증이 지나쳐 이를 넘어 발생하는 알츠하이머나 치매에 이르는 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의 하나가 되었다. 

치매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결코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이 사라져 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들에게 망각은 신의 배려가 아닌 신의 형벌과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했던 순간의 추억, 이루고자 했던 목표,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 종국에는 자기 자신조차도 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망각이 이렇게 두렵고 무서운 것이지만 망각하는 것이 마냥 나쁘기만 한 현상은 아니다. 망각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있을까. 만일 인간에게 생긴 모든 일을 망각하지 않고 세세히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이나 치욕스러운 일,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다면 사람은 단 하루도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몸에 상처가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듯 정신적인 상처는 망각으로 인해 잊혀지면서 정신적 아픔도 조금씩 낫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철학자 니체는 망각을 '축복'이라 여기며 "행동을 하려면 잊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니체에게서 망각은 결코 완전히 잊는 것이 아닌 "기억이 양보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기억하거나 망각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무엇을 꼭 기억해야 하는가 혹은 어쩌면 망각해도 좋은가 하는 문제이다. 니체에 따르면, 개인에게든 국가에서든 과거의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은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해를 입게 되어 파멸하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개인이나 국가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망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맛보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른바 '마들렌 효과' 또는 '프루스트 효과'라는 용어가 이 소설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마들렌 과자에 홍차를 곁들이며 우리들도 잃어버린 시간을 더듬으면서 좋은 기억과 망각을 찾아나서면 어떨까? 잃어버린 시간, 내면의 미로 속으로 걸어 들면 어떤 풍경들이 우리에게 남게 되는 것일까?

어떤 아픔이나 고통을 잊게 만들어 준다면 축복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기억하는 일은 쉽지만 잊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소중한 무엇을 잊는 것, 나의 존재가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기억하려 애쓰고, 잊히지 않으려 애쓴다. 우리에게는 꼭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는 일이 있듯이, 반드시 잊어야 할 일들이 많다. 자연스럽게 망각된다면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만, 아무리 잊으려 해도 때로는 그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미래의 의미 있는 삶을 위해서는 아프고 슬픈 기억은 빨리 잊고 새로운 삶을 맞이 하는 것이 무엇보다 현명한 일이 아닐까.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잊어버리는 것은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능력이며, 벌어진 모든 일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같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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